[신앙단상] 120.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
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

순례를 떠나는 날, 공항에서 이해인 수녀님을 뵈었습니다. 다가가 인사를 드리자 수녀님께서는 손을 잡아주시며 체칠리아의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감정선에 전류가 흐르는 듯 코끝이 찡했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순례는 ‘발로 드리는 기도’라고 하시며 발 닿는 곳마다 틈틈이 묵상을 하셨습니다.

제 아내 체칠리아를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스무 해 가까이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해서 그렇습니다. 아픔을 잘 견뎌 주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힘든 모습 보이지 않으려는 게 정말로 가엾고 애처롭습니다.

그런 체칠리아가 하느님께서 주신 인내의 자비로 삶의 여정을 조심조심 지나가고 있습니다. 슬프다 하지 않고, 쓸쓸하다 하지 않고, 아프다 하지 않으며, 때로는 행복하다고, 평온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흠잡을 데 없는 애덕의 아름다움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만을 바라며 순간순간을 살아냅니다.

체칠리아를 만난 것은 38년 전 가을이었습니다. 혼령기여서 집안 어른의 소개로 선을 본 것이었습니다. 체칠리아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저는 그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이듬해 하느님의 주례로 돈암동성당에서 관면혼배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체칠리아를 저희 가정에 신앙의 씨앗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체칠리아는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주님께 맡기며 절제와 순명으로 저희 가족과 완고한 어른 한 분씩 두 분씩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문으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체칠리아를 통해 저희 가정에 성화의 은총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통째로 그 사람의 생애를 만나기 때문이다’(김재진 시 「만남」 1,2행) 라는 시구처럼 저의 두려운 인생에서 한 사람의 생애를 이렇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체칠리아를 통해서 또 한 분을 통째로 만났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님’!(마태 16,16)

누군가의 인격을 만난다는 것은 모험입니다. 더군다나 신격의 하느님과 만난다는 것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저희 삶에 오랫동안 고장 나 있던 저울을 치워주시고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새로운 저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당신의 추를 하나둘씩 얹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척박한 저희 정신을 아름다운 전망이 되게 하시고 저희를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게 하셨습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콜로 3,18-21).

자비의 희년, 문이 열렸습니다. 그 문을 지나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한순간도 멈칫거림이 없으시며 거짓이 없으시며 하느님의 본성대로이십니다. 이제는 당신의 본성을 만나러 참되신 당신의 음성을 들으러 새로운 순례를 떠나야겠습니다.

주님, 저희 영혼에 오만과 교만은 꺾으시고 겸손과 온유는 키워주소서. 고요와 침묵은 사랑하게 하시고 방임과 불평은 멸시하게 하소서. 분노와 증오에는 불 지르시고 자애와 용서에는 거름을 지피소서. 저희의 곤궁을 드러내어 당신의 은총을 바라나이다. 아멘.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