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뜻합니다. 새해가, 상서롭기도 합니다. 이런 새해의 좋은 기운이 우리의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는 풀과 나무와 새들과 나비와 원숭이들과 토끼들과 저희에게 한해 내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임마누엘이시지만, 새해에는 조금 더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조금 더 하느님을 기다리고, 조금 더 자주 하느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새해 아침에 당신께 몇 가지 저희 계획을 여쭙습니다. 첫 번째는 집에서 기르고 있는 화분 가운데 하나라도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보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동백나무가 여름 가을까지는 잘 자라서 꽃망울을 제법 달고 있었는데 요즈음에 와서 잎을 다 떨구고 꽃망울마저 하나둘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관심과 반응으로 싹이 트고 잎이 나고 자라서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한 마디로 사랑을 주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어가는 동백을 버리지는 않으렵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주 눈길을 주고 물길을 주고 발길을 가까이해 어떻게든 살려 보겠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안 되면 꽃집에 가서 새로 동백을 사와 올겨울에는 꼭 꽃을 피워 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기쁜 소식을 스스로 만들고 찾아내고 그것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기쁜 소식의 반딧불이가 되고 싶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지만, 반딧불이의 깜박이는 불빛은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습니다. 촛불은 사람이 만든 발광체이지만 반딧불이는 하느님이 만든 광원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어둠을 밝히는 촛불들을 끄지는 않겠습니다.
기쁜 소식은 구석을 밝히는 빛입니다. 기쁜 소식이 빛을 통과하면 아름다운 색상을 만들어 냅니다. 성경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이사 52,7) 그렇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은 아름다운 천사의 발과 닮아 있습니다.
올겨울 여느 해 같지 않게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이란에서 노숙자들이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시내 곳곳의 벽에 ‘친절의 벽’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란 시민들은 스스로 만든 이 벽에다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문구와 함께 옷들을 걸어 놓았다는 소식입니다. 친절의 벽이 나눔의 자비 터, 사랑의 우물가가 되었습니다. 단절을 의미하는 벽이 오히려 사랑을 더욱 가깝게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훈훈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말씀드리기는 새해에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결합하여 세상이 평화로웠으면 합니다. 광야에서 사막에서 도시에서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하늘과 바다와 땅에서 시시때때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폭력으로 무자비하게 죽어가는 영혼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인간의 위치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겠습니다.
배고픔과 굶주림에 대한 슬픔과 고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는 차가운 파도 위의 난민들도 자유와 건강과 안전한 생명의 축복을 받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담한 나날을 보내는 어린이들을 찾아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새해 아침에 “하루를 살아도 / 온 세상이 평화롭게 / 이틀을 살더라도 /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 그런 날들이 / 그날들이 / 영원토록 평화롭게-”라는 김종삼 시인의 시 ‘평화롭게’를 펼쳐 읽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