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23. “너 어디 있느냐?”

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
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

가끔 밖의 일로 집에서 나가 있을 때 꼭 한두 번은 아내 체칠리아에게 전화를 합니다. “당신 지금 어디야?”라고 물으면 “저 지금 ○○예요. 그때쯤이면 집에 가요” 라고 응답을 합니다.

하루는 식탁에 앉아 빵을 나누는데, 전화 걸 때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황당한 곳에서 전화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혹 상대방이 잘못 들으면 자신이 위치 추적 대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체칠리아의 말이 옳았습니다. 지금까지 자녀에게나 친구들에게나 직장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면 이렇게 먼저 물었던 것입니다. 예의에 어긋난 전화 화법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물음을 태초에 ‘사람’에게 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이런 물음을 하게 된 경로를 창세기는 길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습니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보이셔서,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어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에 넘어간 여자가 열매를 따서 먹고 그것을 남편에게도 먹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습니다(창세 2,5-3,7 참조).

‘사람’과 그 아내는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을 때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저희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다고 핑계를 대시 시작합니다. ‘사람’은 제 아내를 탓합니다. 여자는 뱀이 꾀어서 그랬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세 번을 물으십니다. 그 시간만큼은 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한 번도 꾸중하지 않으십니다. 그 어떤 질책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화도 분노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저희에게 삶의 지향점이 어디냐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온전히 깨달아서 도달해야 할 하느님이 지정한 곳에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저희에게 그 장소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냐, 저희 삶의 목표가 마땅한 것이냐를 깨우치시려고 저희에게 물으시는 겁니다.

주 하느님,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