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24. 꽃풍선을 주세요

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

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들 / 내 가느다란 줄에 매달아 놓을까 봐 / 피었다 지는 꽃잎도 붙잡아 놓을까 봐 / 가볍게 부딪혀도 / 부서지는 것들 / 흩어지는 것들 /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졸시 ‘거미’ 전문

동시는 시인들이 쓰는 ‘어린이들을 위한 시’입니다. 동심을 뿌리로 시심을 밀어 올려 피우는 시의 꽃입니다. 동시에는 진실함과 선함과 아름다움의 가치가 담겨 있고 단순 명쾌하고 쉽고 재미있어서 주로 어린이들이 독자가 됩니다. 동시는 어린이들의 영혼을 위한 비타민입니다. 요즈음에는 동시를 쓰는 시인들도 많아지고 동시를 찾아 읽는 어른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분 앞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말렸습니다. 그분은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주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루카 18.15-17 참조).

신앙이 깊은 어느 선배 시인이 저에게 ‘당신의 시에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아. 하느님에 대한 시를 쓴다면서’ 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 저는 쓴다고 쓰는데요.…’ 선배 시인에게 저는 말끝을 제대로 맺지 못했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것은 하느님과의 동업인데, 시를 잘 쓰려면 하느님의 선한 의지를 잘 지켜야 하는데, 그럴 때 창조의 신비가 잘 드러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동시를 종교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판단이 저의 동시를 성숙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동시에서 종교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의 동시에 ‘하느님’이란 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자연스레 ‘하느님’이란 말이 녹아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동시에 당신의 신성을 보여주시며 더 안으로 알차게 하셨습니다.

제가 동시를 쓰는 것은 작고 쓸쓸한 것들, 슬퍼 가슴속에 눈물 괴는 것들 한 번 바라다보아 주고 눈길 한 번 주는 것입니다. 작은 마음들을 보듬어 주고 아픈 가슴 한쪽 구석에 묻어 둔 눈물 흘릴 수 없는 것들 눈물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쓸쓸해서 슬퍼서 숨어 우는 것들 눈물 닦아 주는 것입니다.

동시는 아픈 어린이의 영혼을 안아줘야 합니다. 상처받은 어린 영혼들, 건강하지 못한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존재 이유가 사랑이라면 동시도 사랑이 없으면 설 자리를 잃습니다. 저희 인간에게 좋은 미덕이 있다면 그 중의 으뜸이 하느님이 주신 사랑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시 쓰는 일이 가장 죄 없는 일이라 합니다. 저는 동시에서 어린이들에게 참된 것, 고귀한 것, 의롭고 정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과 평화로운 것을 권합니다. 잡한 것, 사악한 것, 추한 것, 속된 것을 멀리하라고 동시를 씁니다. 그런데 아직 저에게는 기막힌 동시 한 편이 없습니다. 시의 칼날을 더 세게 잡아야겠습니다.

동시를 쓰는 일은 하느님에 대한 저의 기도이며 인간의 동심과 우주의 신비를 진실하게 풀어 드리는 저의 가난한 예물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저의 동시(童詩)에 받아들이는 봉헌입니다.

하느님이 / 목련 가지에 / 흰 풍선을 불어 놓고 / 소리도 없이 터드립니다 / 이런 일은 해마다 봄이 오면 / 계속될 테지요 / 향기 나는 꽃풍선을 갖고 싶어요 / 예쁜 개구쟁이 하느님 / 저에게 꽃풍선을 주세요 졸시 ‘꽃풍선을 주세요’ 전문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