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이 시작되는 한 달 전, 휴대폰으로 난 그에게 인사를 드렸다. “올 한해도 행복하고 건강하십시오. 선배님은 제 가슴에 언제나 살아 계십니다. 다시 뵐 때까지는 이렇게 문자와 기도로 세배를 드립니다.”
그는 나의 영원한 멘토 이만섭(요셉) 선배님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국회)의장님”으로 불렀지만, 난 줄곧 “선배님”이라 불렀고, 당신 역시 그렇게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는 나의 고교(대륜) 대선배이다. 그의 모교 사랑은 유별했다. 누가 뭐래도 민족 최고의 사학이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삶을 가르쳐준 명문임을 어느 자리에서도 거리낌 없이 자랑했다. 다른 사람, 정치인이면 몰라도, 평생 ‘정의와 청렴, 민족 사랑’으로 살아온 그였기에 그 자리에서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문들은 그를 존경했고, 모교의 ‘상징’으로 늘 모시고, 찾았다.
후배 중에도 기자인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유독 깊었다. 동문이나 다른 언론인들을 만나면 나를 자랑했고, 대부인 최인호 선생님과 함께 내가 쓴 기사나 칼럼을 읽어보시고는 전화로 ‘한마디’를 해주셨다. 고교 후배 언론인이 드물기도 했지만,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에게서 당신의 언론인 시절과 미처 다하지 못한 시간을 느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런 두 분이 있어 나의 기자 시절은 행복했다.
정계 은퇴 후에도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 “기자가 무슨 돈이 있어. 돈 있으면 기자가 아니야”라며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사주시면서,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언론에, 대한민국의 정치와 미래에, 그리고 일상의 삶에 있어서 늘 강조하신 것은 ‘양심’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그는 ‘깨끗한 양심이 좋은 베개’란 영국 속담을 인용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편안하게 잠을 자며,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의 양심은 타고난 기질에서 나왔지만, 그것을 평생 지켜준 것은 교육과 신앙이었다. 그 역시 가톨릭 신자로 1987년 3월에는 국회에 가톨릭신자의원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굳이 드러내지 않았고, 미사에 잘 참례하지는 않았지만 주님의 뜻을 섬기며 개인적 욕심과 부정한 마음을 버리고, 이웃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언론인, 정치인이 가져야 할 종교적 양심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사신 이만섭 선배님.
그의 올곧은 양심은 죽음까지 두렵지 않게 했다. 여든셋이 너무 짧아 애통할 법도 하지만 어떤 연명도 거부했다. 그리고는 아무런 질병의 고통 없이 그야말로 천수를 다하고, 지난해 12월 14일 편안하게 주님 곁으로 가셨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예의 당당하면서도, 인자한 풍모로 천국의 ‘소금’ 역할을 하시리라.
이렇게 나는 삶의 소중한 또 한 분과 헤어졌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렇게 이별하고 떠나는 분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그만큼 나도 이승과 헤어질 날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니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선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느 신부님이 말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이승보다 하늘나라에 점점 많아져요. 그분들과의 만날 날을 생각하면 죽음이 꼭 두렵고, 외롭고, 싫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이제는 나도 그렇구나. 정말 하늘나라에 가면 어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젊은 날에 생을 달리한 죽마고우를 꼭 찾아봐야지. 최인호 선생님과 이만섭 선배님도 다시 만나야지. 은총이 내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님도 직접 한번 뵐 수 있었으면.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