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35. ‘최후의 만찬’, 또 다른 메시지

이백만 요셉(캄보디아 하비에르학교 홍보대사)
이백만 요셉(캄보디아 하비에르학교 홍보대사)

매년 맞이하는 성주간이지만 올해의 성주간은 나에게 좀 특별했다. 내가 여태껏 알지 못하고 있었던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메시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가톨릭 교리 신학원에는 ‘연구수업’이라는 복음 강론 실습 과목이 있다. 평신도의 복음 강론, 아무리 실습이긴 하지만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소 미사 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신부님의 강론을 듣곤 했는데…, ‘신심 깊은 신자들’인 동료 학우들을 앞에 두고 강론을 하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 차례는 사순 제5주간 금요일(3월 18일)이었다. 강론 주제는 성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의 복음,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최후의 만찬’(루카 22,14-23)이었다.

‘최후의 만찬’ 스토리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다. 예수님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제자들에게 ‘절대적 사랑’을 베풀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눌 정도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힘주어 말씀하셨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풀어보면 ‘하느님의 나라에서 파스카 축제가 다 이루어질 때 비로소 너희들과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겠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당신께서 열두 제자들을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하신 다음 ‘그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거룩한 초대’와 ‘거룩한 기다림’, 그분은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런 약속을 하셨을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세상은 축제 분위기였다. 백성들은 로마 식민 통치의 굴레에서 해방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기대했는지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했다. 제자들은 한술 더 떴다. ‘최후의 만찬’을 할 때까지도 그들은 들떠 있었다. 완전히 동상이몽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수차례에 걸쳐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해 줬지만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아들이신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까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그날 저녁 식사 때의 말씀이 스승의 하직 인사이며 마지막 유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관심도 없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해방 군주가 될 게 분명하다는 부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자기들끼리 ‘자리다툼’을 한 사실을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바티스타 티에폴로, 알브레히트 뒤러, 틴토레토 등 천재 화가들이 ‘최후의 만찬’을 성화로 시각화했다. 그림을 보면 그날의 만찬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나를 놀라게 한 사실은 제자들의 탐욕스런 표정과 흐트러진 자세다. 내가 그동안에 알고 있던 사도들이 아니다. 탐욕과 위선과 배신이 엿보이고, 절망과 탄식과 호기심이 넘실댄다. 심지어 술독에 술을 붓고 있는 엉뚱한 행동도 있다. 지극히 세속적인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맹자는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부끄러움이 있을 수 없다”(無恥之恥 無恥矣, 무치지치 무치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체험하고 나서야 스승의 말씀을 믿지 않은 데 대해 부끄러워했다. 땅을 치며 통곡했다. 진심으로 회개했다. 죽을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 그리고 스승을 따라 순교로 생을 마감했다.

강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만 기억했지,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은 보지 못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