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4. 주님과의 약속, 백두산과의 약속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 (소설가)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 (소설가)

 

<가톨릭 삼수생-5>

5월이 오면 아카시아 꽃도 피었다가 진다. 모든 꽃이 그러하듯이 피어난 꽃은 마침내는 시들고 떨어진다. 그러나 꽃은 그 아름다움이나 향기로 스스로 몫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피어나는 과정일 뿐이다. 아름다운 소멸, 씨앗이라는 생명으로 남고 자신의 몸을 거두는 것이 꽃의 삶이다.

그날도 미리내 성지에는 아카시아 꽃이 지고 있었다. 성 라자로 마을의 이경재 신부님이 선종하시고 그 삼우제가 있던 날이었다. 미리내 성지의 성직자 묘역에서 삼우제를 마치고 진흙이 질퍽거리는 묘소를 내려올 때였다. 바람이 불면 아카시아 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며 발밑에 깔렸다.

미리내에서의 모든 추모행사가 끝났지만 나는 어쩐지 묘역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제 누가 있어 내 손을 잡고 걸어가 줄 것인가. 신앙의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성지 안을 서성거리고 또 서성거리다가 내 발걸음이 가 닿은 곳이 용인의 골배마실 성지였다. 김대건 성인의 집터라고 알려진, 김대건 성인께서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뵙고 작별인사를 했다고도 이야기되는 성지다.

도랑물 하나가 반원을 그리며 감싸고 있는 골배마실 성지 안을 거닐며 오래오래 생각했다, 이제부터 내 믿음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그때, 내게 세례를 주기 전날 저녁 백두산에서 숲길을 산책하다가 만난 이경재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그 나름의 탤런트를 주셨지요. 당신에게는 글을 쓴다는 재능을 주셨잖아요. 하느님께서 주신 그 탤런트로 하느님을 더 드높이고 더 아름답게 하는 글을 쓴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무언가가 내 가슴에 차올라 우뚝우뚝 돌기둥이 되어 서고 있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약속, 백두산에서 한 약속, 신부님과의 약속이었다.

우리 교회의 순교사를, 그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소설화하자고 가슴에 박아 넣던 순간 하느님을 증거하는 글을 쓰도록 하자는 그 결심은 기쁨이고 은총이 되어 아카시아 꽃잎보다 더 희디희게 쏟아져 내렸다. 가톨릭 3수생 늦깎이에게 그것은 무슨 축복이었던가.

성지에서 돌아와 바로 「생활성서」를 펴내고 있던 카리타스 수녀회 수녀님께 성지와 순교자를 찾아가는 글을 쓰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해서 ‘순교자의 길을 따라’라는 이름의 성지순례기가 시작됐다.

교회사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왕조실록을 비롯한 관변 자료, 그리고 순교자가 태어나서 순교하기까지의 장소를 찾아다니는 여행이었다. 매달 한 분의 순교자를 찾아 떠난 이 여행이 103회까지 이어졌으니 10여 년을 순교자들과 울고 웃던 나날이었다.

어느 산기슭, 어느 바닷가에 홀로 앉아 나는 수없이 물었었다. 나도 순교할 수 있을까. 나도 이분처럼 하느님을 따라 걸어갈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때마다 내가 스스로 한 말은 ‘주님, 그때 가 봐야 알겠습니다’ 하는 졸렬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내가 수없이 물었던 그 대답과 마주할 수 있을 그날은 언제일 것인가. 가톨릭 3수 끝에 맞은 영세 그리고 찾아온 내 믿음의 시간이 꽃이었다면 이 나날들이 어떻게 열매로 맺어질지를 나는 가슴 두근거리며 기도한다.

우리의 순교사를 신자가 아닌 사람들의 눈높이로 그려내어 저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자들의 삶을 눈물겹게 복원해낼 수 있기를. 그것이 내 믿음의 열매이기를.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