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42. 한센병 환자의 인권

채규태 알비노(가톨릭대 의대 교수, 한센병연구소장)
채규태 알비노(가톨릭대 의대 교수, 한센병연구소장)

학생 때 읽었던 「파우스트」의 한 구절, ‘인생은 살다 보면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는 말을 이제야 몸으로 알게 되니 뒤늦게 철이 드는 모양이다. 과거 읽었던 책 중에서, 왜 구약은 창세기부터 시작하고, 논어 첫 마디가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으로 시작되는지 은퇴할 때가 되니 저절로 수긍이 간다. 지금은 어지간한 이야기를 들어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우리는 광복 이후 70년 동안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그 과정에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 수많은 왜곡 현상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모두가 바로 잡아야 할 잘못과 사회적ㆍ조직적ㆍ국가적 범죄다.

대표적 사례가 한센병 환자의 인권이다. 해방 전후 비토리 학살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살인과 폭행이 있었음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밝혀졌고, 후속 조치로 보건복지부 한센인권 피해 진상조사 규명위원회의 조사와 이들을 위한 생활보조금 지원 법률 제정 등이 따랐다.

한센병 환자의 인권 침해를 공부하던 중 많은 의문이 있었다. 수많은 순교자의 피와 눈물로 세워진 한국 교회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종교로 알려져 있지만, 한센병 환자들이 겪었던 수많은 피해 사건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었다는 데 놀랐다.

주교회의가 1982년 인권 주일을 제정하고 인간의 권리에 대해 예언자적 입장을 확실히 한 점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이 그 전에 일어났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1945년 소록도 84인 학살 사건 때 어린 양들이 교회 밖에서 신음하고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이 고통에서 우리 구하소서’ 외치며 죽어가고 있을 때, 섬 밖의 사람들은 어찌 그리 무관심했는지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인권 침해도 없어야 한다. 현대사의 어두운 과거를 조사하고 반성하는 일은 미래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억압받는 일을 없애는 첫걸음이 된다.

독일은 유다인 학살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열 번 스무 번 사죄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심어 줬다. 우리 언론은 일본에게 독일을 보고 배우라고 권하고 있다.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아시아 점령 지역에서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던 일본은 과거 소록도 병원에서 벌어졌던 강제 격리, 강제 노역, 단종 수술, 학대 등에 대해 사죄하고 590명의 생존자에게 보상을 해줬다.

한센인의 인권 침해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자 항소를 포기하고 한센인들에게 보상한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복 이후 소록도 주민에게 자행됐던 단종과 낙태 수술에 대한 사죄와 보상의 책임은 현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 국가적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은 2014년 4월 광주지법에서 시작됐다.

정부가 원고에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지만, 피고인 정부는 불복하고 항소했다. 2015년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원고인 소록도 주민 135명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국가는 단종수술 3000만 원, 낙태 4000만 원 등 총 94억 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정부는 다시 불복했다. 강제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139명의 원고와 한센인권 변호인단은 정부가 더 이상 항소하지 말고,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6월 20일 서울고등법원은 소록도 주민들에 대한 현장 검증과 함께 단종 수술과 낙태 피해에 대한 특별재판을 연다. ‘너희는 이 땅에서 번성하라’는 창세기 말씀처럼 인간의 생존권, 즉 자식을 낳고 기르는 가장 보편적 인권을 위협한 일은 정부가 분명히 책임져야 할 일이다.

원고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리가 다 죽어 없어지길 기다리나.” 한센병 회복자인 소록도 주민들의 한숨을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다 듣고 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