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50. 사랑에 무딘 마음을 탓하며

정필국(베드로, 대전교구 유구본당 주임 신부)
정필국(베드로, 대전교구 유구본당 주임 신부)

“한 생을 주님 위해 바치신 어머니~ 아드님이 가신 길 함께 걸으셨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드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성모의 밤 강론 때 불렀던 노래다. 그때 어머니는 기력이 쇠잔해서 방에 누워 계셨고 나는 뭔가 직감을 했던지, 미리 어머니의 일생을 회고하고 추모하기라도 하듯 그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가 허망하게 떠나시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부모를 여읜 자식을 왜 죄인이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잘한 일은 하나도 없고, 그저 못해 드린 일만 생각나니….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어머니가 건강하고 기력이 있으실 때 좋은 데를 모시고 다니지 못한 일이다. 그때만 해도 어디든 다니실 수 있었던 때인데 왜 그걸 못했을까.

그러는 중에 변고가 생겼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기억력을 잃으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 후로는 아들이 신부라는 것만 아시지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전혀 모르셨다. 그저 아들 얼굴과 미사에 가야 한다는 것밖에 모르셨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어머니는 세 살배기 어린애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늙고 쇠약해져 갔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아프지도, 늙지도 않고, 내 곁에 늘 그대로 계실 줄만 알았고, 당연히 사제관을 지켜 주실 줄만 알았다. 아, 어느 시인의 탄식처럼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비켜갈 수 없는 세월에 이미 쇠할 대로 쇠해지신 어머니. 흘러가 버린 그 세월을 어이 돌린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가슴 찢어지는 일은 정신없으신 중에도 아들이 안 보이면 안절부절못하시는 어머니께선 밤에 잠을 안 주무시고 수십 번을 내 방에 들락날락하시며 내가 자는 모습을 확인하신다. 살금살금 들어오셔서 자고 있는 아들을 빤히 쳐다보고는 나가신다. 불도 안 켜고 넘어지지도 않으시는 게 신기하다.

식복사가 잠든 시간에 당신 손으로 뭐래도 챙겨 주고 싶으셨는지…. 새벽에 잠옷 차림으로 식용유를 커피인 줄 알고 질질 흘려가며 아들 방에 가져오신 적도 있다. 날달걀을 프라이인줄 알고 들고 오다가 깨진 걸 책상 위에 올려주시고 먹으라 하신다. 그때 “엄마 고마워. 잘 먹으께”라고 웃으며 받아서 먹는 척이라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흘렸다고 잔소리하자 낙심한 표정으로 당신 방으로 돌아가시던 그 모습을 어찌 잊을까.

아들이 신부 됐다고 그렇게도 뛸 듯이 기뻐하시던 어머니, 삶의 의미를, 사는 이유를, 삶의 목표를 아들 신부 지켜 주는 것으로 삼으셨던 어머니께 난 무엇을 해드렸던 것인가. 겉으로만 사제였을 뿐, 어머니께는 참으로 이기적이고 마음이 무디고 사랑에 더딘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작 사제로 산 사람은 내가 아닌 어머니셨다. 어머니의 삶이 어머니의 마음이, 어머니의 생각과 기도와 실천이 정녕 사제였다. 이제는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씻을 수 없는 죄과를 이제 내 머리 백발이 되어 어머니를 보내고서야 뼈저리게 느끼고 예수님 십자가 아래서 가슴을 치던 제자들의 심정이 나와 같았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 사랑에 무뎠던 못난 마음아!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