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은 공주 중동성당에 내디딘 첫 발걸음이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사경을 헤매시던 중 성당에 발을 내디디게 된 것이 어머니와 나, 우리 가족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어머니는 그날부터 단 하루도 미사에 빠지지 않으셨다. 거기서 삶의 희망을 찾으셨던지 화색이 돌고 살맛을 느끼신 듯했다.
나와 여동생도 어머니를 부축하고 열심히 다녔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우리 아들딸도 신부님, 수녀님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가슴에 깊이 꽂혔고, 그 소원을 꼭 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제직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됐다.
나 역시 성소에 대한 강렬한 소명을 느껴 말씀드리자,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감격에 겨워 한참을 우셨다. 아들이 신학교 간다는 게 그리도 좋으셨는지 도시락 반찬은 김치와 장아찌에서 달걀 프라이로 바뀌었다. 신학교에 들어가던 날부터 어머니는 내 빨래를 식구들 것과 절대 섞어 빨지 않으셨다. 하느님께 바쳐진 몸이라고 성별(聖別)하신 것이다.
가족들은 나의 신학교 진학을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하셨다. 버스 한 번 타지 않으시고 걸어 다니셔서 무릎이 다 부서질 지경이 됐다. 사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하던 날 감사와 기쁨의 눈물로 울음바다가 됐다. 오로지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의 결실이었다. 아들의 첫미사로 어머니는 회갑을 대신하셨다.
어머니가 병환 중 대소변을 못 가리게 돼 실수하셨는데 아들 앞에서 부끄러우셨던지 나를 바라보며 “미안해유, 고마워유” 하신다. 순간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며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뭐가 미안해, 아들인데. 자식인데 뭐가 고마워?” 라며 엄마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정신없는 중에도 그리 고맙고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가끔은 함께 앉아 TV를 보다가 옆에 앉아계신 어머니 의자를 내 쪽으로 바싹 당겨서 어머니를 꼭 안아주고 볼에 뽀뽀를 해드렸더니 내 품에 쏙 안겨서 그렇게 좋아하신다. 순간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못하고 보낼까 봐 “사랑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도 좋으셨는지 더 바랄 게 없다는 듯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사랑한다는 그 말, 고맙다는 그 말을 더 자주 해드릴 걸…. 돌이켜 보면 그렇게 연약하고 배움도 없던 어머니가 어떻게 그리 강인한 모습으로 고달픈 삶을 헤쳐 오셨는지 신비롭기만 하다. 참으로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했다.
우환이나 병고로 곤경을 겪고 있는 신자들을 어찌 그렇게 잘 찾아내시는지 내게 알려주시고 밤새워 기도하셨다. 지나가는 걸인도 데려다 씻기고 밥을 해먹이시고 주변에 아픈 사람들을 가족같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셨다.
내게는 어머니가 오로지 나를 위해 세상에 오셨고, 나를 키워 사제로 만들어 하느님께 봉헌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피고 지켜 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수호천사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제단에서 영원한 생명을 입으로만 강론하는 아들보다 영원한 생명을 하루하루,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살아내신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통해 삶을 알고, 신앙을 깨닫고 살아있는 기도를 배웠다.
이제야 내 곁을 떠나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난 욥처럼 부르짖는다. 내 눈으로 기어이 어머니를 다시 뵙고야 말리라, 이 눈으로 어머니를 보고 이 귀로 어머니를 듣고 이 손으로 어머니를 안고야 말리라. 주님께서 마련해 주실 재회의 기쁨을 믿고 고대하기에 오늘도 난 다시 힘을 낸다. ‘엄마, 너무 보고 싶어!’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