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54. 베를린에서 평양까지, 그리고 하나 되기

이강민(노트케르 발불로, 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이강민(노트케르 발불로, 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하나 통일 원정대’는 독일로 향했다. 그런데 기상 악화로 이륙도 못 하고 5시간 동안 기내에 갇혀 있었기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갈아타야 할 비행기를 놓쳤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상황을 해결하고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해 7월 24일 새벽 마침내 베를린에 갈 수 있었다. 어렵게 온 만큼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호텔에서 마지막 연습을 했다.

베를린 장벽 앞에서의 첫 번째 공연은 장소가 주는 분위기와 의미,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노래가 어우러져 남다른 감동을 줬다. 많은 사람이 모인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 공연에서도 독일인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통일에 대한 지지와 호소를 노래했다.

그동안의 인생 여정과 고향(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과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통일에 대한 기대감 같은 여러 감정이 섞여 북한 친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국 친구들도 같은 마음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받은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또 많은 이가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한 메시지를 대형 한반도기에 적어 줬다. 이틀 후 베를린 하일란트 교회 공연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첫 모임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모두 잘 끝낼 수 있어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독도에서 시작된 탈북 청년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의 노래는 베를린으로 이어졌고, 통일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머지않아 통일이 돼 평양에서 노래하는 날이 올 것을 우리는 확신했다. 나는 꼭 그런 날이 빨리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번 독일 공연에 찾아온 독일인 친구가 “독일 통일은 서로 다른 나라의 이익 추구가 아닌, 원래 하나였던 나라의 재통일(Wiedervereinigung)”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이익과 손실을 따지기 전에 원래 하나였던 우리가 마땅히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 통일임을 인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탈북 청년들과 몇 달간 지내며 느낀 것은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와 정서와 예법, 언어가 같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한국 개신교 초기부터 순교자와 수많은 목회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가장 보수적인 개신교단의 신학대학 출신인 내가 지금은 한국 가톨릭 교회의 중심인 명동대성당의 교중 미사를 담당하는 ‘가톨릭합창단’ 지휘자가 됐다.

나를 따라 가톨릭으로 온 가족도 있고, 여전히 개신교에서 성직자와 장로 등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가족도 있다. 가톨릭 교회에 처음 왔을 때, 난 탈북자가 한국에 왔을 때처럼 교육받았다.

새로운 재미도 있고 새내기 신자의 눈높이와 위치에서 새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 그동안 이해하지 못한 새내기 신자와 평신도들에 대한 이해도 생겼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신앙의 터전을 옮겨 살기도 쉽진 않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했고, 서로 다른 교회 문화와 교리도 배워야 했다. 탈북 청년들처럼 내게도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이해하려 애쓰며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

갈라진 남과 북처럼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는 원래 하나였다. 갈라진 수십 개의 교회가 하나 되는 날이 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서로 사랑하고 인정하고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길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을 주님께서 바라실 것 같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