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신앙의 터전을 옮긴 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왜 가톨릭 교회로 갔느냐’는 것이다. 이유야 수십 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품위 있는 전례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주는 평안함이었다. 강론에 치우쳐 있는 대부분의 개신교 예배보다 말씀과 성찬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미사 순서마다 주는 의미와 감동 또한 참 좋았다.
6년 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의 부활 성야 미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유학 시절 유럽의 여러 가톨릭 교회에서 종종 미사를 드리고 연주도 했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례에 빠져들었다. 담백하고 순수한 수녀원 성가대의 고운 소리도 큰 감동이었다. 미사와 성가를 진심으로 열심히 준비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4)는 말씀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감격스러운 미사가 진행됐지만 나는 성체를 모실 수 없었다.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럽 유학 시절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가 함께 성체를 나누며 형제임을 확인하는 공동 미사(예배)를 자주 드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경 공부까지 함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유럽의 상황이고, 우리는 아직 서로 이해와 정리가 더 필요한 부분이 많은 현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가톨릭 교회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품위 있는 전례에 큰 감동이 없을 수 있다. 전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진다면 좋을 것 같다.
두 번째는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다. 개신교 신학자나 목사인 친구 제자들은 성만찬에 대한 견해 차이를 묻고, 평신도들은 성모님에 대해 질문한다. 개인적으로 가톨릭 교회 신자로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개신교회와 다른 공동체 문화였다.
‘모든 신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돼 하느님께 직접 예배하며 교제할 수 있다’는 개신교회의 교리인 만인제사장설(가톨릭 교회의 평신도사도직과는 다르다)에 따른 생각이 공동체 안에 깔려 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와 달리 신자들이 투표로 뽑은 대표(목사ㆍ장로ㆍ권사 등)가 공동체를 이끈다. 이렇게 선발된 신자 대표들은 교회 사업과 현안을 공동회의와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성직자가 되려면 신자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성직자가 된 후에도 신자들이 공동회의와 투표를 통해 성직자를 면직 해임할 권한이 있다. 이러한 만인제사장설이 깔린 문화는 평신도의 자율적 활동과 참여를 끌어낸다. 이 때문에 생기는 분쟁과 문제도 있지만, 공동체 생활이 활성화돼 있고 냉담자도 적은 편이다.
이와 달리 가톨릭 교회는 사제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잘 따르는 문화가 있다. 신자들의 자율적 활동에 다소 제약이 있어 개신교회보다 참여나 활동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분쟁은 훨씬 적은 것 같다.
두 교회 다 장ㆍ단점은 있다. 하지만 하느님 사랑에 감사하고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서로 우열을 가리기 전에 내가 예수님을 따라 사는지, 하느님 은혜를 받은 자답게 생활하는지,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자주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늘도 말씀을 보며 반성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