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한세상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저는 오랜 세월 동안 호스피스에 투신하면서 호스피스야말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삶의 완성을 도와주는 최상의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반세기 의학의 발전으로 항생제가 발견돼 감염성 질환이 치료되고, 과학과 보건 의료의 향상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30년 이상 연장됐습니다. 1955년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52.4세였으나 이제는 80세가 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이 생명을 살리고 연장하는 데에 집중하다 보니 죽음을 기피하게 되고 임종 환우를 돌보는 데 소홀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말기 환우들이 극심한 통증과 고통 속에서 임종을 맞이하거나 중환자실에서 생소하고 불편한 기계와 기구가 부착된 채 가족과 격리돼 외롭게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마지막 삶을 인간답게 가족에 둘러싸여 편안한 임종을 맞이하게 하려는 의료계의 각성이 크게 일어났는데, 이것이 바로 호스피스ㆍ완화의료입니다.
호스피스는 예로부터 임종이 가까운 말기 환우를 돌보는 봉사 간호 활동이었으나, 1967년 영국의 시스리 선더스 박사에 의해 지금과 같은 근대적인 호스피스ㆍ완화의료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말기 환우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통증과 말기 증상 등을 조절하는 현대의학을 접목하고, 환우와 가족을 전인적으로 돌보기 위해 의료인 이외에 사회사업가, 봉사자, 성직자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팀을 구성해 돌보는 방법을 호스피스ㆍ완화의료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호스피스는 일찍이 1965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 의해 강릉에서 시작됐으나 오랫동안 지역사회에 머물렀습니다. 이러한 정체 시기가 지난 후, 1981년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성직자들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다학제팀으로 구성된 근대적 호스피스ㆍ완화의료가 본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후 호스피스는 30여 년간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이제는 국가가 호스피스 수가를 책정해 말기 환우를 돌보는 보건 의료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는 우리나라 사회 발전의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지난 30여 년간 호스피스에 종사하면서 대략 6개월 이내, 주로 한두 달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말기 암 환우들을 돌보게 됐기에 이젠 호스피스가 ‘나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암 전문의로 살기를 원했고 호스피스는 제 계획에 전혀 없는 뜻밖의 사명이기에, 제 삶을 이끌어주신 주님이 주신 은혜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1981년부터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에서 종양내과 의사로 근무했습니다. 종양내과 의사로서 저의 역할은 대개 암이 이미 전이된 상태, 즉 말기 암 환우들을 항암제로 치료해 생명을 살리거나 연장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일부 암 환우들은 항암치료로 완치돼 의사로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말기 암 환우들은 생명은 연장되지만, 마지막은 통증 등의 증상으로 괴로워하다가 사망하곤 했습니다. 이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듯 너무나 괴로워, 내가 왜 암 전문의가 됐을까 하며 한탄하곤 했습니다.
저의 이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어 그때마다 병원 내 성당에 가 예수님을 경배하며 하소연하곤 했습니다. 주님은 침묵 속에 계셨지만 제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주시며, 간혹 섬광처럼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시곤 했습니다. 이처럼 성체조배는 제 생명수가 됐고, 저의 삶은 기도가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주님은 저를 호스피스의 길로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