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65. 주님의 자리 만들기

우기홍(미카엘, 배우)
우기홍(미카엘, 배우)

오랜만에 아는 형님을 만나러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 한참을 나와 보니 그만 휴대폰을 집에 놓고 나와 버렸습니다. 휴대폰이 없다는 걸 인지한 순간 왜 이리도 불안하던지요. 휴대폰이 누군가의 연락을 취하는 도구만이 아니라 검색, 음악 듣기 등, 제 삶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요물이더군요.

이 요물이 없다 보니 금단현상(?)마저 생기는 것을 보며 ‘내가 많이도 묶여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렵게 찾은 공중전화로 형님께 연락하려는데! 허허, 더 큰 장애물이 그만. 제가 형님의 번호를 모르는 겁니다. 휴대폰이 암기력까지 상실하게 하였네요.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해 어렵사리 번호를 받아 형님께 연락을 취해 만나게 됐습니다.

휴대폰 없이 살 땐 어땠을까요? 20년 전쯤이 생각나더군요. 그때는 삐삐와 공중전화로 연락해서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요. 늘 주머니엔 전화 한 통화 할 만큼의 동전이 있었습니다. 주황색 공중전화와 허리에서 울리던 삐삐!

조금은 다른 얘기겠지만, 연락을 자주 못 하는 상황에서의 기다림은 일상에서 작은 스릴감도 느끼게 해 줍니다. 상대방이 10분만 늦어도 길이 엇갈린 건 아닌지, 사고가 난 건 아닌지…. 또한 기다리는 대상에 따라 심리적 기다림은 다릅니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마지못해 만나는 사람인지에 따라서요.

이 두 종류의 약속은 천지 차이로 기다림의 농도도 다르고 애틋함도 다를 겁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죠. 빨리 보고 싶고, 좋은 데 가고 싶고, 만나서 할 얘기를 만나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죠. 지나치는 사람들 틈에서 보고 싶은 상대를 찾느라고 마치 제 눈은 슈퍼맨의 눈처럼 레이저를 쏘며 사람을 찾는 능력은 최고로 상승하죠.

그러면서도 진열장(show window)에 비치는 자신을 힐끗거리며 확인해 주는 센스! 그 사람이 좋아할까? 옷매무새를 고치기도 하고 머리를 만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상대방이 마지못해 만나는 대상으로 바뀐다면 어떨까요? 만나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지는 않을까요? 이렇듯 마음의 관용도나 애틋함의 수치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대림절(待臨節, Advent)은 ‘오다’라는 뜻의 라틴어 아드벤투스(Adventus)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고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어떤 기다림의 대상일까요? 제 머리에서는 보고 싶은 대상이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은 그저 등 떠밀려 만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봅니다. 혹시 기다리는 대상이 예수님이 아닐 수도 있는 건 아닐까요? 이 나이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건지….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4,18).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는 보이는 세상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제겐 다른 차원의 기다림일 겁니다. 교회가 대림절을 새해의 시작으로 정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새해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봐 보세요. 영원한 것에 맛들여 보세요!!’라고 예수님께선 세상으로 물들어 있는 제게 초대의 의미로 속삭이시는 것 같습니다.

연초의 금연 계획이 3일 만에 깨져 버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주님과의 친교 시간이 단번에 늘지는 않겠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만 휴대전화 만지기, 일주일에 한 번은 휴대전화 놓고 다니기 등으로 제 삶에서 공백을 만들어 가는 실천을 하고 싶습니다. 그 공백 안에 주님이 자리하시길 소망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림초에 불을 켜 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