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 곧 비라도 올 듯이 흑백사진처럼 찡그리고 있네요.
어릴 적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흐린 날이 저 같아서 좋았어요. 약간의 설렘조차 있었죠. 왠지 몸은 처지고 무기력감마저 오지만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익숙하고 편했죠. ‘매일 이렇게 흐렸으면 좋겠어’라고 바란 적도 있었으니까요. 이렇듯 회색에 가까운 유년기를 보냈고 그게 제 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회색 빛깔의 아이가 좋아했던 목록을 소개하자면, 유키 구라모토의 메디테이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이 그때를 대변하는 저의 정신세계라고 할 수 있죠.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과의 직접적인 교감 등 자유로운 생활 양식을 추구하는 히피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죠.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 세대에 대한 항거(?)의 의미가 컸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듯 전 감수성이 꽤 예민하다고 착각했고,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했었어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에 취하고 하루키 소설 주인공의 생각과 삶이 저와 닮은 조각이 있다는 동질감에 신기하고 신났죠. 그 감정의 조합들로 저만의 모래성을 쌓았던 거죠. 꼭 음악으로 따지자면 마이너 코드로 진행되는 열정의 음악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만의 색을 덧칠하면서 생기는 과장된 생각과 판단이 마치 특별한 삶을 사는 착각을 가져다주곤 했어요. 그러나 행복하지 못했어요. 열정은 거짓되고 과장되었기 때문이었죠. 진리와 본질이 없는 감정의 허상이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과장된 감정 안에 살았던 전 의식하지 못한 채 뉴에이지의 파고 속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던 겁니다.
오늘의 이 흐린 날은 일 년 중에 하루일 뿐인데 말이죠. 그 회색의 아이가 예수님을 만나서 일 년 내내 울었어요. 서러워서 울었고 감사함에 울었죠. 그리곤 주님께선 말씀해 주셨죠. ‘너만을 사랑한다, 용서한다, 늘 네 곁에 있어 주겠다’고 하셨어요.
살면서 한 번도 든든한 ‘빽’을 가져 보지 못한 저에게 예수님의 현존은 선물 그 자체였죠. 예수님의 사랑이 눈물을 통해 회색으로 덧칠된 상처를 씻겨 주셨고 점점 본연의 색이 드러나기 시작한 거예요. 이제 진짜 자신을 만난 거죠. 이젠 과장 되게 꾸민다는 게 불필요해졌습니다.
‘회색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야. 넌 바다색이었어. 바다색!!! 그 색에 숨겨져 있는 끝없는 생명의 소리와 비릿한 냄새까지도 날 풍요롭게 해. 널 만나서 기뻐, 어쩜 내가 예전에 꿈꿨던 바로 그 아이가 너야. 그런데 난 그것도 모른 채 회색의 감정에 취했던 거지. 예수님을 통해 이제야 널 만나다니. 난 행복해.’
전 기뻤고 지금도 그 기쁨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만난 분이 제가 많이 밝아져 다가설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랬죠. 이젠 누구를 만나는 게 두렵지 않다고요. 예전엔 사람을 만나도 무엇을 얻어 내기 위해서 만났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 만남 자체에 감사해요. 각자의 삶을 나누고 얘기를 하고 차를 마시고 그 안에 예수님이 함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늘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지고 사는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게 해주신 건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사랑 덕분입니다. 그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저도 작은 선물이나마 준비해야겠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