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7. 냄새나는 예수님들

임선혜 아녜스(성악가, 소프라노)
임선혜 아녜스(성악가, 소프라노)

베를린의 여름, 아직 폭염이 식지 않은 저녁, 여느 때처럼 성 헤트비히대성당에 주일미사를 드리러 갔다. 주교좌성당이지만 밋밋한 내부에 천장마저 공사 중이어서 그 웅장한 이름이 부여하는 화려함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는 곳이다.

나는 키 작은 모범생 시절 몸에 밴 습관으로 제대 위를 잘 집중하기 위해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성체분배 시간, 일찌감치 성체를 받아 모신 후 무릎을 꿇고 묵상을 하고 있자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체를 모시러 나가는, 또는 모시고 돌아가는 이들이 풍기는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주일이라고 곱게 단장하고 나오신 할머니의 우아한 향수 냄새며, 나처럼 베를린 시내를 자전거로 달려온 듯한 청년의 땀 냄새 등…. 그런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내 코를 찔러 묵상을 멈추고 돌아보게 됐다.

그 한여름에 두꺼운 긴 소매 옷을 꾸역꾸역 겹쳐 입은 한 걸인 아저씨가 범인(!)이었다. 가만 보니 미사 때 가끔 봐서 낯설지는 않은 분. 아저씨가 지나가고도 한참 후까지 남아 있는 악취에 나도 모르게 다시 고개가 돌아가고 얼굴도 찡그려지려던 순간, 창피함에 얼어버렸다.

악취의 주인을 찾아내려 미사 중에 고개를 돌리고 싫은 내색까지 보인 사람은 거기 있던 많은 사람 중 내가 유일하다는 사실에!

얼른 얼굴을 바로 하고 생각하니, 미사 중 악취는 처음이 아니었다. 또 그 아저씨 말고도 다른 지독한 냄새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들이 적어도 서넛은 더 눈에 띄었다.

내가 갔던 평일 미사에 늘 나오던 약간 정신장애가 있어 보이는 가죽점퍼 청년이며 치렁치렁 겨울 코트까지 입고 비닐봉지를 껴안은 아줌마며….

그런데 이곳 신자들은 악취에 개의치 않고 그 바로 옆에도, 앞에도, 뒤에도 앉아 아무렇지 않게 미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관용인가.

사실 난 가끔 성당에 도착해 그 요주의 인물들(!)이 스캔이 되면 그들 근처엔 되도록 안 앉으려고 했는데 그 기억마저 떠올라 더 부끄러워졌다.

한국교회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대궐같이 큰 성전들이 늘어나면서 세련되고 값져 보이는 안팎의 모습을 갖춘 성전을 더 성스럽다고 선호하며 그 일원이 되는 것을 무슨 특별계급에 들기나 한 듯 사뭇 대견해 하는 우리들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늘 우리 성당에, 주일 미사를 드리러 웬 냄새 풀풀 나는 걸인이 반짝반짝 닦아 놓은 성전 바닥에 발을 디딘다면? 하느님 제사에 정성껏 차려입고 온 자매형제들 사이에 그가 함께 앉고자 한다면?

온갖 때가 묻은 손을 내밀며 평화의 인사를 청한다면? 아무도 그를 쫓아내지는 않겠지만 어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 그는 저 구석자리를 안내받게 되거나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에 결국은 스스로 교회 밖으로 나가버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크고 세련된 교회에는 출입하는 것조차 잘 상상이 안 가는 그들에게 그들만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것이 어디엔가 따로 마련돼 있는 것일까?

이 모든 순간적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던 건, 요즘 우리가 열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난한 교회’에 대한 말씀과 그 행보에 어쩌면 우리는 그저 구경꾼이나 팬클럽 회원처럼

‘멋지다!’ ‘자랑스럽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 담긴 반성이 내 안에서 일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가난한 교회를 자처하고, 내가 가난의 아름다움을 살아낼 때 비로소 나는 그리스도 신앙인일 수 있는 것을.

다음 평화의 인사 때는 내가 먼저 가서 악수를 청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악취로 어쩌면 우리를 향기나는 사람이 되게 해줄 ‘그 냄새나는 예수님들’한테!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