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70. 작은 마구간의 기적

박혜원 소피아 화가
박혜원 소피아 화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38년 프랑스의 아시 성당의 착공(1950년 축성) 시기에는 현대미술품이 교회 미술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보수적 전통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때 뛰어난 선견지명으로 현대미술과 교회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쿠튜리에(M. A. Couturier)와 아시 성당 건립에서 작가 선정 등 핵심 역할을 한 데베미 신부(Devmy)와 같은 앞선 시각을 가진 분들이 등장했다.

쿠튜리에 신부는 “모든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은 받은 자로서 그 속성과 기질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영적인 직감에 준비되어 있다”는 놀라운 발언에 더하여, “재능 없는 신자 작가보다 신자가 아닌 천재작가가 낫다”고 했다.

이는 기존 교회 미술의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는 발언으로 진지하고 우수한 작품성을 가진 작품에서 절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 ‘진리’ 그리고 ‘선함’이 뜨거운 신앙심에 불타는, 즉 작품성이 신앙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열렬한 신앙이 담긴 작품만이 ‘성스러움’에 이를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깨는 이 시각 덕분에 레제, 브라크, 마티스 같은 대가들이 이 성당 건립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는 물론 편협된 종교적 편견을 뛰어넘어 그 예술적 가치를 알아보고 옹호하는 영적 지도자 역할을 한 쿠튜리에 신부와 같은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이 새로운 시도는 순탄치 않았다.

조각가 리시에(Germaine Richier, 1904~1959)의 제대의 ‘십자가상’은 그 파격적인 표현주의적 현대성으로 보수주의 성향의 주교에 의해 철거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대적 표현의 파격은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철거 논란이 불거지자 지역 본당 신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자들과 성직자들을 교육해 진정한 작품의 가치를 일깨우려는 열의와 노력을 보였고, 결국 신자들은 ‘훌륭한 예술적, 정신적 유산’인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고 결국 아시 성당에 대한 큰 자부심을 품게 됐다.

그렇다면 신앙이 담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를 섭외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조건을 갖춘 예술가를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앙과 작품, 둘을 저울질했을 때 결국 ‘작품’이 우선시 돼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의 기적’은 시대의 목소리와 요구에 문을 활짝 열어둔 데에 있다. 이 열림은 바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증거다. 진정 열려있기 위해서는 ‘의식의 전환’과 ‘소통에의 간절한 의지’가 요구된다. 시대에 뒤처진 시대를 일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중세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물론 2000년이 넘는 서양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부패의 시간이 있었다. 종교와 권력이 밀접히 연결됐을 때 인간이 빠지게 되는 것은 권력의 속성일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세시대에는 철학이 있었고 시대를 지탱하게 하는 굳은 신앙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의 골조를 이루는 굳은 ‘정신’과 ‘인문학’이 상실된 오늘날 50여 년 전 프랑스의 한 산골 마을에 세워진 작은 성당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정신 부활의 기적’을 염원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비하면 너무 짧은 그리스도교 역사를 가진 한국.

하지만 그 어느 민족보다 뜨거운 신앙을 자랑하는 종교적 열정은 한국 교회의 귀한 자산이다. 스스로 불살라버리는 소모적인 불꽃이 아니라 마구간의 가난하고 고요한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작은 마구간의 기적’의 불씨가 한국에서도 은근히 피어나기를 꿈꾼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