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파리 동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오른다.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항구마을, 옹플뢰르(Honfleur)에 가기 위해서다. 인상주의 화가 외젠 부뎅과 작곡가 에릭 사티의 고향이어서 예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옹플뢰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와 작은 배들이 시선을 끈다.
노르망디 양식의 집들이 빼곡한 작은 항구를 지나 시내 중심지로 발길을 옮긴다. 파리에서 멀지 않아 파리지엔들이 자주 찾는 이 작은 도시는 대도시의 번잡함을 잠시 벗어나고자 하는 지친 도시인들로 가득 찬 매력적인 곳이다. 골목마다 예쁘고 작은 갤러리, 카페와 가게들로 눈이 즐겁다.
약간 언덕길을 오르자 작은 광장이 나타나고 그 중앙에는 커다란 목조 건물과 목조로 된 종탑이 서 있다. 건물 위에 십자가가 서 있어서 그 건축물의 정체가 성당인 줄은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단단한 돌로 지어진 중세 고딕 양식의 석조 건물이 아니라 너무 수수해 보이는 목조 건물이었다.
의아해 하며 다가가 보니 ‘성녀 가타리나 성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이 성당은 흰색으로 회벽칠한 벽면에 짙은 갈색 나무가 수직으로 나 있는 전형적인 노르망디 양식의 집 모습이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니 그 모습은 더 희한했다. 성당은 마치 거대한 방주 두 척을 나란히 붙여 뒤집어놓은 형상이었다. 이 성당의 역사에 대해 읽어보니, 15세기 중반 ‘백년전쟁’으로 인해 성당이 파괴되자 이 지역의 배를 건조하는 목수들이 대거 참여, 석조보다 비용도 저렴하고 자기들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재료인 나무로 성당을 짓기로 하고 근처의 숲에서 벌목한 전나무를 건축재료로 사용해 지은 성당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유럽의 웅장한 성당에 들어가면 압도되면서 받게 되는 천상의 신비롭고 황홀한 느낌은 없다. 대신에 나무라는 재료가 주는 따뜻하고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됨은 물론, 마치 ‘노아의 방주’ 안에 들어온 듯, 또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는 듯 보호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옹플뢰르로 나를 이끌어준 부뎅과 사티.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옹플뢰르를 생각하면 이 작고 촌스러운 목조 성당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전통적으로 화재의 위험이 적고 견고한 석조로 된 성당을 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마을의 경제 사정과 분위기에 맞는 작고 검소한 모습으로 지역주민에게 친숙한 목재를 이용해 성당을 짓는다는 발상이 정말 근사하다.
남의 평가나 과시를 위해 웅장하고 사치스러운 성당을 짓는 것이 아니라 겉치레나 꾸밈이 없는 모습은 이곳 주민들의 견고한 신앙의 결정체로 당당히 서 있다.
소박한 지역 환경에 어울리고 분수에 맞는 마치 거대한 헛간이 연상되는 이 성당은 하느님을 향한 진정성 있고 솔직담백한 신앙의 표현이다. 기존 성당 건축에 대한 상식을 초월하여 지역주민이 친근하게 느끼는 소박한 건축을 세우는 당당함은 2000여 년의 그리스도교 토착화의 굳은 뿌리가 있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어떤 배경 지식 없이, 성당이라는 공간에 들어가 하느님의 드넓은 포용력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회가 아닐까?
불행히도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인 ‘교회’라는 공간의 본질, 성당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에만 또는 그럴듯해 보이는 성당을 흉내 내는 데에만 급급한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성당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 이 수수한 헛간의 진정성과 토착화된 모습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과연 이곳이 거대한 노아의 방주 안인지 요나의 고래 뱃속인지 아니면 자비로운 성모님의 치마폭 안인지…. 나는 이곳에서 가난하고 친근한 그리스도를 만난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