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쓰다 보면, 가끔 세상이 한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봄바람이 불 때 꽃은 피어나고, 갈바람이 불 때 낙엽들은 우수수 날린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때때로 기쁘면서도 쓸쓸하다. 너나없이 흐르는 세상이다.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은 영혼의 상처를 가지고 있을 터다.
하느님 은총 없이는 중심이 잡힐 리 없는 신앙의 길을 보기도 한다. 참으로 인생이란 언제든 망할 수도, 흥할 수도 있다는 것, 생성과 소멸의 모습이 저리도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봄을 만나 꽃처럼 피어날 때는 언제고, 시간에 쫓기다 어느새 가을바람에 낙엽처럼 흩날려 가다니, 이 무슨 섭리인가?
사순 시기가 아니더라도 한 세상을 잘 견디는 일이 십자가의 길임을 깨닫고 보면, 생은 마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애틋하게 살아가야 할 일이다.
바오로 사도처럼 고통을 기쁨으로 여기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어디 그만한 가르침 하나 깨닫기가 쉬운가? 가르침을 미처 새기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매사를 남 탓으로 돌리는 군상이 바로 ‘나’라는 생각에 이르면, 나 자신이 참 싫다. 하느님 품에 안겨서도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눈앞에 어른거릴 땐 뉘우침도 아프기만 하다.
봄날이요 사순이요 설움에 겨워 눈물짓는 마음이 수선화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데, 주님은 저리도 침묵 속에 꽃빛 햇살을 내려주시니 아픔마저 고요하다.
고통이 클수록 깨우침도 크다는 것을 깨닫는 사순이다. 편안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마음이 짐이 되어 새삼 콘크리트 틈에서 꽃피운 민들레처럼 가슴을 여민다.
“마음이 핀다/고통을 다해 밀어올린/꽃//봄이 아니더라도/꽃잎 미소를 머금고/아픔이 향기를 뿜어낼 때//그 마음 고요하고 순박하다/그 영혼 신비롭고 경건하다//꽃 된 마음/더없이 평화로운 빛깔/지극히 사랑 깊은 향기//시혼에 깃든 새벽빛 선율같이/맑고 그윽한 기쁨이/고난을 넘어 하늘에 닿는다”(졸시 ‘꽃 된 마음’ 전문)
세월이 흐를수록 나 자신의 허물이 커 보인다. 내가 잘 보일수록 하늘이 맑아지고, 사랑이 아쉬울수록 인생이 애틋해진다. 세상에서 내가 밝게 비치지 못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칠 때면, 홀연 주님 말씀이 내 안에 빛처럼 들이친다. 주님께서 주신 빛이 아니시면, 시도, 꽃도 피어날 수 없다. 세상과 내가 한눈에 보일 때면, 마음 한쪽도 열어두지 못해 깨우침도, 자애도 간직하지 못하고 사는 시대 풍경이 안쓰럽기만 하다.
보라! 정치든, 경제든 한 나라를 들끓게 하는 흙탕물 같은 세태 속에서 자기 삶을 똑바로 가는 지도자 하나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닫힌 가슴으로, 누가 주님 앞에 제 마음을 찢었다 할 것인가? 이 사순 시기에 누가 제 슬픔을 열어 지치도록 무디게 살아온 생애를 안고 통곡을 해 본단 말인가?
갑자기 엘리야가 나타나 간절한 기도로 하늘을 뚫어 은총을 비처럼 내리게 한다손 치더라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죄인들끼리 서로 손가락질 해대는 세상에서 누가 진정 제 가슴을 쳐대며 참회의 눈물을 고이 흘릴 것인가?
매사에 화낼 준비만 하고 있는 표정들이 안타까운 사순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성과에만 급급한 나머지 생명에 기쁨을 주는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 세월의 어둠을 본다. 꽃을 봐도 아름답지 않고 시를 읽어도 감동하지 않는 세상의 슬픔을 본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1베드 1,24-25)는 지상에서, 그래도 참회 속에 새 희망이 어둑새벽 들꽃처럼 핀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