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81. 날마다 부활하는 인생

이인평 아우구스티노 시인, ‘산림문학’ 편집주간
이인평 아우구스티노 시인, ‘산림문학’ 편집주간

 

봄은 언제나 겨울을 인내하며 태어나 부활을 꽃피운다. 인생 또한 고난을 겪을 때가 있고, 부활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듯하다. 어느새 한겨울은 멀리 사라지고 부활 축제에 맞춰 봄꽃들이 피어나 향기를 내뿜고 있다. 봄은 지상천국이다.

꽃들이 서로 어울려 피는 것을 보면 인생도 어울려 살아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 고난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봄날에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고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저마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꽃처럼 피어나는 모습이 화사하기만 하다.

사실 인생은 날마다 부활을 살고 있는 셈이다. 비록 세월이 덧없고 세상이 못마땅해도 어제 일을 뒤로 넘기고 아침마다 새롭게 부활한 오늘의 삶을 맞이하고 있어서다. 그러니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기쁨의 비결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깨우쳐주신 부활 신앙으로 한 생애를 하루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님께서 은총을 주시기만 하면 한평생이 봄날일 텐데, 그 은총의 핵심이 고난을 견디고 맞이할 기쁨이고 보면, 삶의 고난을 부활의 희망으로 여기고 사는 게 참된 순명이 아니겠는가.

죽었다 되살아나는 것이 부활이라면,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생한 것 역시 부활을 체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때 난 생계로 건설 일을 한 적이 있다. 젊었을 때 난 건물 4층 외벽에서 1층 타일 바닥으로 추락한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났고, 하반신이 마비될 수도 있었는데 퇴원할 때는 두 발로 걸어 나왔다. 나는 퇴원 전 예수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고난의 체험을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죽음에서 벗어났을 때, 난 진정 새로 태어났다. 생사를 초월한 은총 안에서 내 존재가 예수님처럼 부활했다는 기쁨을 깊이 깨달았다.

그로부터 세상과 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 세상이 아니라, 두 세상을 살게 되었다는 부활 의식을 가지고 눈을 뜨니 삶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보니 ‘죽어도 좋을 시를 쓰자’는 열정이 솟았다. 날마다 부활의 삶을 살면, 희망과 용기와 기쁨이 가득 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처럼 기쁘기만 해 온 천지를 뛰어다니고만 싶었다. 지상의 모든 생명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주님의 섭리를 확연히 깨달았다. 부활의 기쁨을 주시는 주님을 내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천국의 기쁨은 동심에서 오고/인생의 참된 의미는/시인의 펜 끝에서 깊어지네//어떤 표현으로도 닿을 길 없는/어린이의 마음, 시인의 마음/은유의 흥감에서 빛나는/순수한 영혼의 신령한 빛을 보네//동심에 깃든 하느님의 자비/시심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하늘과 땅이 맞닿은 신비를 보네/동심과 시심의 향기를 지닌/오묘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보네”(졸시 ‘관천’ 전문)

인생에서 부활을 체험한다는 것은 놀라운 은총이었다. 고난을 통한 부활 체험은 한 생애를 승리로 이끌어주는 원동력이요, 온갖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게 하는 희망이었다. 나는 내가 체험한 부활의 기쁨으로 모든 고난을 감내할 준비를 갖출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삶을 좌절하지 않고 견뎌왔다.

참으로 인생은 주님께서 원하신 때에 이 세상으로 왔다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따라서 주님께서 은총을 주시기만 하면 어떤 고난 속에서도 시를 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인간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부활의 승리로 드러난 까닭이며, 그 기쁨이 곧 내 삶의 여정인 까닭이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