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82. 신앙을 기쁘게 산다는 것

이인평 아우구스티노시인, ‘산림문학’ 편집주간
이인평 아우구스티노시인, ‘산림문학’ 편집주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헌법 첫머리에 명시된 것처럼, 세례를 받고 나서 난 ‘천주교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종교’라고 생각했다. 살다 보니 하느님을 믿지 못하면 근심 걱정이 쌓였다. 믿음이 약해지면 삶의 활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나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실감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을 알고부터 나 자신의 장단점을 알게 됐다. 따라서 내 삶의 가치, 기쁨의 가치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자연스럽게 알아차렸다.

세상살이가 두려워도 하느님의 자비가 있기에 두렵지 않았다. 천지 만물이 하느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모두에게 베풀어진 은총이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물론 법리적 주권이라는 측면은 아니다. 뭐가 됐든, 내 것으로 소유해야 할 필요 이전에 이미 모든 것이 모두에게 베풀어진 은총의 섭리 안에 있고, 소유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기쁘게 살아갈 권리가 내게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주신 ‘평화’는 지상이 불행한 곳이 아니라 행복의 터전이라는 인식을 하게 됐고,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구원의 샘물로 솟구치는 은총이 곧 기쁨임을 그대로 믿게 됐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그 평화 속에서 기쁨을 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렇지만 각박한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그 평화와 기쁨이 캄캄해질 때도 있었다. 하던 사업이 허물어지자 마치 내 인생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고뇌의 늪에 빠졌다. 이 무슨 불운인가.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믿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허우적거리는 것 아닌가.

나도 모르게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는데 이야말로 하느님을 향해 삿대질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참으로 하느님을 굳게 믿지 못하고, 이해타산에 휘말려 상처를 덧내고 있었다. 굳센 믿음은 어디로 갔으며, 구원의 기쁨은 어디에 던져두고 벌레처럼 웅크렸단 말인가.

현실적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나는 스스로 불확실한 존재였다. 넋을 잃고 내 한 몸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결국, 주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금 주님을 찾으며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사실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건만, 나 혼자 지쳐 어둠에 휩싸였다. 한밤중에 주님께서 내 시혼을 깨웠다. 순간, 나를 짓누르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면서 펜을 들었다.

“주님께서 잠든 나를 깨워/새벽의 찬미를 들으려 하시네/내 미몽을 흔들어 깨워/고요의 선율을 쓰라 하시네//새벽에 안긴 세상은/엄마 품에 잠든 아이 같고/눈귀를 기울여 쓴 내 찬미의 시는/산골의 맑은 샘물 같아라//보소서, 주님, 주님의 기쁨이/내 시로 샘솟았나이다/당신을 그리워하는 내 영혼이/당신 사랑으로 찰랑이나이다”(졸시 ‘새벽의 시’ 전문)

인생은 수명의 길고 짧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목숨 하나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 문제였다. 한목숨, 한 생애가 하느님 품에 안겨지기만 하면 완전히 성공한 삶이기 때문이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은 상태이고, 인생이 기쁘고 즐겁지 않다는 것은 은총을 외면했다는 방증이었다.

모든 이에게 베풀어진 하느님의 터전에서 내 욕심에 치우친 만큼 불행했다. 욕심이란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쓰러지고 마는 속성이 있다. 나는 결국 허물어지고 나서야 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내겐 망하는 것도 은총이었다. 불멸의 기쁨이 왔기 때문이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