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195. 꽃자리

백형찬 라이문도서울예술대 교수
백형찬 라이문도서울예술대 교수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한쪽에 쌓여 있는 예쁜 녹색 책에 눈이 갔습니다. 책을 펼쳐 보니 온통 자살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살예방센터에서 펴낸 자살자 가족들의 수기였습니다. 승마 선수를 꿈꿨던 어린 손녀를 어처구니없이 보낸 할머니의 글, 아직도 아들의 휴대폰을 들고 아들과 주고받은 카톡만 들여다보는 아빠의 글, 심약하고 병든 육체를 가진 남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으로 쓴 누나의 눈물편지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딸이 저세상으로 가기 전에 엄마에게 보낸 유서 글 “다음 생애엔 엄마가 내 딸 해! 내가 정말 예쁘게 키울게”를 읽을 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모두 죽지 않을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선 매일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모두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 힘든 상황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심리학 책에 늘 등장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늙은 마녀의 무서운 얼굴로도 보이고, 젊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로도 보입니다. 그림은 보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현재 어떤 심리 상태인지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반 병만 남은 귀한 포도주가 있습니다. 이 반 병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 반 병밖에 안 남았네!”라며 슬퍼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직 반 병이나 남았네!”라며 기뻐합니다. 같은 상황을 놓고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결국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많은 시간을 보직자로 일했습니다. 교수들은 대학에서 보직을 맡으려 하질 않습니다. 이유는 해당 부서의 업무를 책임 관리해야 함은 물론 정부의 각종 평가와 국고 지원 사업에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교수에게 정작 필요한 연구와 교육은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보직자를 오래 하면 연구물(책, 논문)도 없고 강의 평가도 엉망으로 나오고, 건강도 크게 나빠집니다. 그럴 때마다 심한 자괴감이 듭니다. 보직은 보람도 있지만 고통이 큽니다. 저 역시 많은 것을 희생해 가며 보직을 수행했습니다.

일반 교수들과 부딪치고, 같은 보직자와 부딪치고, 대학 경영자와도 부딪치고, 심지어 가르치는 학생과도 부딪쳤습니다. 고통이 클 때마다 피해 가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느님께 드린 기도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시인 구상(요한 세례자) 선생님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꽃자리’라는 좋은 시를 남겨주셨습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네가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 될 수도 있고, 꽃자리도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수첩 속에 또는 책상 위에 붙여 놓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을 때,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때, 죽어버리고 싶을 때 읽어 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부정이 긍정으로 바뀝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야 합니다. 하느님께 의지하여 가시방석을 꽃자리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느 시처럼 대추 열매는 저절로 붉어지지 않습니다. 그 안에 태풍 몇 개와 천둥 몇 개, 그리고 벼락 몇 개가 들어가야지만 붉어집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로마 5,3-4)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