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어느 날. 저와 본당 신자, 수녀님이 함께한 일행은 한 교우의 문상길에 올랐습니다. 저녁 늦게 출발해 자정이 넘어서야 당도했습니다. 연도를 바친 뒤 다음날 출근을 위해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었을까. 동이 터오는 그때,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난간을 들이받고 20m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한 노랫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아침 해가 따갑게 비치고 있었고, 싱그러운 풀냄새와 상쾌한 공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몸을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일행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일행 중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3명 중 한 분은 바로 다리를 절단했고, 수녀님은 중태여서 2주를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사색이 되어 병원 응급실로 뛰어들어오는 아내를 보고 고마움과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걱정하면서 달려왔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지듯 아팠습니다. 수술실로 가면서 아내가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을 때 저는 “다리를 잘라야 살 수 있다면 주님께 맡기자”고 태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도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제 두 다리는 뼈가 으스러지고 수없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6시간의 대수술 끝에 다음날 새벽에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절단해야 한다던 다리가 다행히 보였습니다. 대신 핀과 쇠로 다리를 관통해 이어진, 무거운 가시관처럼 생긴 철관이 다리를 꼼짝할 수 없게 붙들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고통과 추위도 밀려왔습니다. 누군가 커다란 망치로 제 머리와 팔, 다리를 마구 내려치는 것 같았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큰 수술만 14번을 받았고, 지체 부자유 4급 장애인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남들에게 이를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됐고, 충격으로 머리에 이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애초의 진단에도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실명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저의 두 눈은 온전히 볼 수 있었고,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숨을 쉬며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상처 부위가 당겨 걷는 게 힘들고 어깨와 팔이 저리고 아픕니다. 그러나 주님은 참고 견디며 인내하는 힘과 용기와 사랑을 주셨기에 매일 인근 올림픽공원을 한 바퀴씩 돌고 있습니다.
제가 하루에 최대로 걸을 수 있는 걸음은 약 7000보입니다. 그 이상 걸으면 어김없이 고통이 찾아옵니다. 제가 주님께 갈 때까지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얼마나 좋은 길을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발 한 발이 주님을 위한 값진 걸음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교통사고 후 저는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세속의 건강보험이나 연금보험 등을 떠올리시겠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보험’입니다. 여러분은 건강과 위험에 대비해 이미 많은 보험을 들어놓으셨을 겁니다. 제일 보장성 좋은 것으로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하늘나라를 위해서는 얼마짜리 보험을 들어놓았습니까? 하루에 얼마만 한 시간을 주님께 기도드리고, 주님과 같이 지내십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기도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봉사는 곧 하늘나라에 보험을 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인으로서 가장 뿌듯한 마음이며, 하느님께 선택받은 가장 큰 은총의 선물일 것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