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살면서 일밖에 몰랐던 제가 교통사고를 통해 갑자기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됐고, 모든 것을 주고만 살아왔던 제 삶이 이젠 아무것도 줄 수 없게 됐다는 절망감은 제 마음 깊은 곳에 또 다른 병을 가져다줬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불면증으로 하루 2시간 이상 잘 수 없어 항상 멍하기 일쑤였습니다. 오랫동안 복용하는 정형외과 약물이 얼마나 위장을 쓰리고 아프게 하는지 먹는 것마다 체하고 설사를 했습니다. 여기저기 가려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시원하지 않고, 신경쇠약으로 하찮은 일에도 섭섭해 하며 화를 곧잘 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분노가 되어 가만히 있어도 답답해졌습니다. 제 가슴과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 마음은 직장도, 가족도,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떠나겠다는 심정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강화도에 있는 피정의 집에서 그렇게 한 달을 보냈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한낮의 뜨거운 햇살과 들판뿐. 먼 바다와 갈매기를 멍하니 쳐다보는 일과가 반복됐지만, 며칠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습니다. 성체가 모셔진 성당에 발길이 머물렀습니다. 성체조배를 하면서 처음에는 모든 것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그 마음은 주님과 타협하고 싶은 마음으로 변해 갔습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주님께서 저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 주시기를 청하며 내 안에 가득 주님을 들이마시고,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오더라도 주님을 떼어 놓지 않는 은총을 청했습니다.
숨을 내쉴 때는 제 안에 있는 고정관념과 갈등, 육체의 아픔과 참기 어려운 고통, 힘든 모든 것을 치유해 주시길 청했습니다. 그리고 성체 앞에 마주앉은 어느 날. 그날따라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들고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까지도 모두 주님께 봉헌했을 때 제 육체의 겉모습을 보면서 절룩거리는 내 안의 영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신 선물은 이사야서 43장 1-4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 강화도에 머물면서 그렇게 주님은 저를 속속들이 치유해 주셨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체조배를 통해 저를 불러 저의 영육을 모두 깨끗이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얼마나 세밀하고 섬세한 분이신가를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 쓸모 없는 한 인간으로서 외롭고 힘들고, 고독하다고 좌절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그때는 이렇게 오늘 주님께서 다시 불러주시리라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갈매기 조나단은 무리와 어울려 거친 바다에서 먹이를 잡고 하늘을 나는 것이 삶의 전부라는 게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좀더 높이, 좀더 멀리 날고 싶어 했습니다. 갈매기는 주린 배를 채우는 일, 동료들과 어울려 하늘을 나는 일도 좋지만, 더 높은 세상, 더 먼 세상을 향해 동료들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느낄 수 없는, 전에는 배울 수 없었던 참된 비행의 기쁨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떠나지 않고 비우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