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랑원추리꽃을 만나러 지리산에 올랐습니다. 섬진강 바람도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는 노고단 봉우리로 향했습니다. 골짜기 아래에서 쳐다보면 봉우리를 채 넘지 못한 섬진강 가쁜 숨이 구름으로 걸려 있을 길입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앞이 분간되지 않게 자욱했고, 산길을 내딛는 발자국마다 자박자박 젖었습니다. 한참을 돌아나니 빗살 같은 햇살에 양쪽 숲길이 환한 초록을 드러냈고요. 산행객 몇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습니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불현듯 달려든 새소리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숲 어디선가 저를 바라보는지 새소리도 멈추었어요. 숲에 퍼지는 소리가 하도 커서 긴장이 되었지만 새와의 동행이라는 멋진 상상에 가슴이 들렁들렁했습니다. 툇마루에서 양푼 가득 밥을 비벼 먹던 아이는 ‘그만 먹어, 작작 먹어’로 듣고, 머리를 밀던 스님에게는 ‘머리 밀고 빡빡 밀고’로 들린다는 검은등뻐꾸기의 추임새입니다. 회색빛 도심에서는 들을 수 없는 청정한 새소리입니다.
언젠가 학생들과 지리산 답사 중에 마침 검은등뻐꾸기가 우짖기에 ‘홀딱 벗고’ 흉내를 따라 했지요. 그때 학생들의 야릇한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습니다. 검은등뻐꾸기의 ‘홀딱 벗고’ 추임새는 지리산을 오를 때 삶의 비루한 꺼풀을 하나씩 벗어 던져야 한다는 어느 스님의 죽비 같은 해석입니다. 조류학자에게는 ‘카ㆍ카ㆍ카ㆍ코’로만 들릴 ‘홀딱 벗고’ 네 박자가 다시 저를 따랐습니다.
노고단 봉우리가 저만치 보였습니다. 홀딱새의 동행은 어느새 멈추었고 야생화가 길을 따랐습니다. 하늘말나리, 일월비비추, 산오이풀, 마타리, 기린초, 둥근이질풀, 미나리아재비, 노루오줌, 흰제비난초, 갖가지 꽃들이 길섶에 피었습니다.
드디어 봉우리에 오르자 지리산 십경에 드는 노고단 운무가 목화솜을 두텁게 깔아놓은 듯 신비로운 광경을 펼쳤습니다. 짙은 운무로 절벽 아래가 보이지 않아 마음이 조여들긴 했어요. 몇 발짝씩 옮기며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하늘이 까매지고 운무가 거칠게 흔들렸습니다. 세찬 바람이 굉음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거리고, 광풍에 먹구름까지 거드니 조금 전까지 들렁들렁했던 마음에 두려움이 차오르는 것이었어요. 주변이 캄캄해지는 거였어요.
한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겠구나, 태풍 예보가 있으면 몸을 사릴 것이지, 후회와 두려움이 광풍보다 더 끓어올랐습니다. 걱정하는 식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강하지도 않으면서 잘난 척은 얼마나 했던지 별별 생각들이 마구 스치는 것이었습니다.
저절로 기도가 되었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바람이 잦아들고 검은 구름이 물러가기 시작했어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서 두리번거렸지요. 운무의 결이 엷어졌더군요. 그마저 천천히 밀려나자 저만치 노랑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높이 솟은 바위틈에서 노랑원추리꽃이 화르르 웃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31) 말씀이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아득한 절벽에서 피어나는 노랑원추리도 저렇게 빛나는데 저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요.
세찬 풍우도 거친 먹구름도 만드신 주님은 저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두신 오직 한 분인데 말입니다. 들의 꽃처럼 화르르 피다가도 바람이 스치면 있던 자리조차 알아내지 못한다는 시편의 말씀이 바로 이 자리에서 드러났던 겁니다. 바로 여기가 노랑원추리의 군락지였는데 말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