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10. 나의 소명, 장례지도사

심은이(데레사,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장례지도사)
심은이(데레사,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장례지도사)

1997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사람이 죽는 것을 처음 보았다. 육신이 움직이지는 못하더라도 숨이 남아 있을 때 사람의 존재와 숨이 끊어지고 난 뒤 사람의 존재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내 눈으로 보았던 그날이 20년 지났지만, 아직 그 장면이 생생히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고인을 사람이라는 물건을 다루듯 함부로 했다. 적어도 어린 내 눈에는 그리 비쳤다.

죽음을 처음 접하는 나는 죽는 것에 대해 두렵거나 무서울 줄 알았다. 그러나 무섭기보다는 그들의 모습에 화가 많이 났다. 마치 내 가족에게 함부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로부터 잘못 내려오는 장례 풍습의 관행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인격적으로 대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낡아 버린 장례 문화를 개선하고자 서울보건대학 장례지도학과에 입학했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 그런 나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별 이상한 사람 대하듯 했지만, 난 그 일의 시작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엄마의 말 한마디가 힘이 됐다.

“데레사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님께서 너에게 주신 소명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 아니어도 할 사람들이 많다. 내 직업 선택에 일반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또는 꺼리는 이 직업, 장례지도사를 택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귀하고 큰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싫어해서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꺼리지만 나만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 일은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며, 그 일을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용기 있게 결정했다. 또한 결정할 수 있도록 곁에서 늘 기도 안에서 도와주신 나의 어머니께서 함께해 주셨기에 내가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는 장례지도사입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내 주변에 오길 꺼리고, 내 손을 만지기도 싫어해서 처음엔 남모르게 상처받기도 했다. 고인을 씻겨드리고, 옷을 입히고, 곱게 화장해 드리고 관에 직접 모신 뒤 그분들이 고향으로 향할 때, 나는 먼 길 편히 가시라는 인사를 한다. 그리고 “주님 이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고 기도해 드린다. 그렇게 그분들을 떠나보내고 나면 다른 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충만함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오른다.

장례지도사로 근무한 지 17년째. “주님! 오늘 하루도 당신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평소 나는 기도로 예수님과 많은 대화를 하고,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자주 한다. 짜증도 냈다가, 웃기도 했다가, 투정도 부리고. 그리고는 늘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후회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모든 게 당신 덕분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주님께서 곁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로 일과를 마무리한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