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어오면 병원에도 감기 환자가 늘어나듯 어김없이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갑작스러운 계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환절기에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도 계절을 타기 마련이라 괜히 우울해지고, 허탈해지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하물며 나이 든 어르신들은 제 삶을 사느라 바빠 소홀하게 느껴지는 자식들로 인해 더 외로움을 타고 쓸쓸함을 느끼시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다.
한해 자살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그리고 우울증을 앓는 분들이 많다. 이유야 어찌 됐든 처음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들을 보고 화가 났었다. 목숨을 함부로 한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으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줬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일 텐데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차디찬 공기가 오고 가는 11월의 어느 날. 20층에서 투신한 자매님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수도회 소속 신부님 전화를 받고, 응급실에서 고인을 모시고 왔는데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두개골은 으스러져서 바글거리고, 복부는 나뭇가지에라도 걸렸는지 개복수술을 한 것처럼 흉측스럽게 벌어져 있었다.
고인의 상태도 심상치 않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데 자살로 죽음을 맞은 이를 볼 때면 마음이 내내 편치가 않았다. 경찰서에서 검사 지휘서가 발급된 뒤 둘째 날에서야 입관하게 됐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인을 정성스레 모셨다.
고인의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라 다른 분들의 입관 시간보다 배로 걸렸다. 그리고 입관이 끝났는데도 자매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날 퇴근 후 집에 오는 길, 내 몸이 이상했다. 아마도 자매님을 입관하느라 몸이 너무 긴장했던 모양이다. 꼭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과 남편을 챙겨줄 몸 상태가 아니었다.
으슬으슬 춥고, 속이 매스꺼워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옷을 입어도, 양말을 신어도 발이 너무 시리고 추웠다. 10년 넘게 일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챙겨 달라고 부탁하고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옷을 몇 개씩 껴입고, 겨울 이불을 두툼이 덮고 나서야 눈이 감겼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왜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든 걸까? 낮에 입관한 자매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아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새겨진 고인의 육신과 함께. 그 자매님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았다. 아마도 이분이 나의 기도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바로 연도 책을 꺼내 자매님을 위해 기도해드렸다.
“주님 모니카 자매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모니카 자매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짧은 연도를 마치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몸은 제자리를 찾았다. 정말이지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바라며 고인을 위한 연미사를 신청하고, 며칠 동안은 가족들에게도 부탁해 모니카 자매님을 위한 연도를 바쳐드렸다.
11월은 위령성월이다. 매년 11월, 모든 연령이 기도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여 연도를 바쳐드린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