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13. 죽음을 위한 준비

심은이 (데레사,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장례지도사)
심은이 (데레사,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장례지도사)

어릴 적 성당에 가려면 10리(4㎞)를 걸어나가 버스를 타고 20분쯤 가야 했다. 주일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외할머니, 어머니, 동생들과 그렇게 늘 준비하고 떠난다. 10리 길은 그냥 걸어가질 않는다. 물론 하느님께서 주시는 멋진 자연풍경을 사계절 느끼면서 갔지만 항상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었다. 묵주신공(묵주기도)이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선창하고, 큰소리로 묵주신공을 하면서 걸어간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외출할 때에는 늘 한 손에 묵주를 돌리면서 다니는 습관이 생기게 됐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늘 하신 말씀이 있다. “기도는 무기이므로 많이 쌓아놓아야 한다. 그래야 위급한 상황이 닥칠 때 무기를 활용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어릴 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라면서 실감하게 됐다.

나의 기도 효력이 점점 잃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신앙생활에도 소홀해지고 겨우겨우 미사에만 참여하는 나를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곳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장례식장 현장에서 수녀님들이 고인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성적으로 참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인 모습들은 다시금 무언가를 깨닫게 해준다. 천주교 신자인 고인 중엔 평생 신앙생활을 잘하셨지만 마지막 장례 미사를 하지 못하게 되거나 연도를 하러 오는 신자 분이 많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임종 직전에 대세를 받았음에도 연도하러 오시는 분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렇게 마지막으로 장례 미사까지 하고 떠나시는 분을 볼 때엔 ‘정말 기도생활을 많이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죽음을 많이 지켜봤지만 이쯤에서 마지막 준비를 잘했던 한 자매님 사연을 소개하고 싶다. 당시 50세도 되지 않았던 고인은 난소암이었다. 처음에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신자인 그는 하느님과 타협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나를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를 많이 하신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약속한 십여 년이 흘러 아이들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그는 그제야 만족해 하며 모두에게 아름다운 인사를 남겼다. 8남매 중 막내인 그는 형제자매들에게 “내가 먼저 가 있을게. 고마웠어”라고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나눴다. 남편에게도 “고맙고 행복했고, 너무 많이 울지 말고, 나중에 보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때 새 장가를 가도 좋다고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염습하고 수의를 입히고, 화장을 곱게 해드린 뒤 누워 계신 고인의 모습은 마치 편안한 잠을 청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인의 장례식장에서 끊이지 않는 연도 소리가 마치 그분을 편안하게 보내 드리는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잘하신 것 같아 자매님을 보내 드리면서 마음이 무척 편안하고 뿌듯했다.

죽음은 늘 삶의 곁에 있다. 모두가 영원하지는 않다. 이곳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에 잠시 내려와 우리는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의 막이 언제 내려질지 모르니 떠나는 사람도, 보내야 하는 사람도 서로에게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곳 세상이라는 무대에서만큼은 영육 간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