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 프란치스코(1181/2~1226) 성인이 머물렀던 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성지 몇 곳을 순례했다. 성인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였으며 보통은 인적이 드문 첩첩산중 바위틈을 찾아 기도했다. 베개에 깃털을 넣으면 마귀가 낀다며 딱딱하고 차가운 돌베개를 베고 잤고, 음식은 대부분 날 것으로 연명했다.
하긴 그 깊은 산 속 어디서 요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기력이 많이 떨어지면 약간의 포도주와 구운 빵을 먹는 정도였다. 이 같은 극한의 가난을 그는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다. 그는 아시시의 부잣집 포목상 아들로 태어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으나 20대 초반 세속을 떠나 가난한 삶을 택한 것이다.
프란치스칸 성지 중에 포치오 부스토네(Poggio Bustone)라는 산골 마을이 있다. 우리 부부는 해발 1000m 정도 되는 근처의 은둔소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성스러운 동굴(Sacro Speco)이라는 곳이 있다는 사진을 보고 내친김에 거기까지 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계시의 동굴’이라 불리는 중요한 성지였다. 목적지까지 0.45m라는 표지판을 보고 금세 도착하려니 생각했으나 가도 가도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 순례의 마지막 코스였기 때문에 해가 저물어 오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돌아가야 하나, 더 가야 하나,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가?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거의 포기하려는 순간 그 깊은 산 속에서 작고 허름한 집터 같은 것이 보였다. 바로 ‘계시의 동굴’이었다. 동굴 앞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청동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났고, ‘아들아 너의 죄를 모두 사하노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은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께로부터 그간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곳이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죄에서 벗어난 프란치스코에게 그의 수도회가 세상 끝까지 번성할 것임을 바로 이곳에서 약속하셨다. ‘계시의 동굴’이라 불리는 이유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그 마을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마침 식당 주인이 숙소를 운영한다기에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샤워하기 위해 물을 트니 물이 좀 나오나 싶더니 금세 끊겼다. 너무 황당하여 주인에게 항의 전화를 했더니 자기 집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단수되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고 다닌 우리에게 남은 물이란 한 모금 정도의 작은 플라스틱병 바닥에 남은 물이 전부였다. 나는 그 물을 수건 한 쪽에 떨어뜨려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어났다. 한 모금의 물로 온몸을 닦고도 남을 정도로 개운하게 몸을 닦았던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프란치스코의 가난을 맛보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란치스코는 왜 그처럼 가난한 삶을 택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님께서 가난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둥지가 있으나,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인간은 가난해야 겸손할 수 있으며, 겸손해야 비로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이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난을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