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 한번 먹읍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빈말 중 하나일 것이다. 나 역시 이 말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을 많이 하지 말고, 해가 되는 말이라도 한 말은 꼭 지키라”는 어느 성인의 가르침을 보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실제로 밥을 먹을 사람에게만 밥을 먹자고 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상환해야 하듯이, 말에도 빚이 있어서 말을 하면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말빚을 지게 된다. 이번 주 모처럼 약속이 꽉 차 있다. 지난여름 이탈리아에서 만난 유학생 가족에게 한국에 오면 꼭 보자고 하여 오늘 저녁 만나기로 했고, 몇 달 전 식사 한번 하자고 한 동료들과 식사가 내일이며, 어느 소녀와의 저녁 약속도 잡혀 있다.
그중 마지막 약속은 어쩌면 그녀의 인생에서 중대한 갈림길이 될지도 모른다. 공부를 다시 시작해 새로운 인생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 제안을 얼굴도 보지 못한 그녀가 받아들여 내일 만나기로 한 것이다. 크고 작은 약속과 만남은 말로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란 때로 의도가 좋으면 일단 뱉어 놓고 책임을 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말은 지키는 것 못지않게 듣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말을 상대가 흘려듣지 않고 결과를 주면 감동한다. 반면 알았다고 해 놓고 함흥차사인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큰 것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은 신뢰의 척도다.
사람들이 모이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달콤 씁쓰름한 뒷담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죽하면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고 말씀하셨을까. 뒷담화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동조하는 모양새가 되는데 그런 날은 영 찜찜하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나에게 별로 잘못한 일도 없는 사람을 마구 흉을 보다니 뒷담화는 죄질이 나쁘다.
요즘은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을 더 많이 듣게 되는 것 같다. 할 말, 못할 말, 거짓말, 말 뒤집기, 쓸데없는 말, 잔소리, 욕설. TV를 보고 있노라면 정치에서 오락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무서운 말 잔치에 “저 말빚을 어찌 다 갚으려 저렇게 떠들어댈까?”라는 생각이 든다.
성녀 젬마는 수호천사를 직접 볼 수 있었고, 그와 대화도 나눴다고 한다.
“누구든지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는 말이 적고 모든 것을 잘 견딘다. 예수님의 뜻을 받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남이 묻기 전에 무심코 네 의견을 말하지 말라. 네 의견을 주장하지 말고 항상 침묵을 지켜라.”
수호천사가 젬마에게 한 말인데 바로 내가 새겨야 할 말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충고를 해 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그동안 얼마나 남을 가르치려 들었는지 창피할 정도다.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되려면 젬마의 수호천사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신약성경 속 예수님처럼 쉽게, 정직하게, 진실되게 말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에 꾀를 부리지 않는 것이다.
“주님께 겸손되이 간구하오니 / 우리 입 그 언제나 진실 전하며 / 진리의 달고 단맛 마음에 느껴 / 기쁨의 찬양 노래 읊게 하소서.” 이런 성무일도를 하느님께서 아침저녁으로 들으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런데 내가 또 이렇게 가르치려 들고 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