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20. 사랑 사랑 사랑

고종희(마리아, 한양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미술사가)
고종희(마리아, 한양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미술사가)

“사랑 없으니 지옥, 사랑 하나 있으니 낙원.”

평생 함께 살아온 부부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가 있는데 그 차이가 사랑 하나에 달려있음을 깨닫고 쓴 문장이다. 사랑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데 부부간, 고부간, 그리고 형제간의 사랑처럼 가까운 관계일수록 주고받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고사성어도 그래서 나왔고, 가족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일이요, 둘째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나머지 덕목들은 대부분 이 둘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마음을 써 드리는 분 중에 홀로 사시는 자매님이 한 분 계시다. 어느 날 그분 댁을 방문했는데 추운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지내시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사연을 물으니 당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되는지 여쭈니 나라에서 지급하는 이런저런 돈 합하여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난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됐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그분께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 있다. 그런데 올겨울 초 그 자매님 댁을 방문했는데 여전히 난방을 안 하고 바닥에 이불이 깔려 있었다.

아직 춥지 않아서 난방을 안 했고 그간 편안하게 지낸 것에 대한 보속을 하고 싶어서 난방비를 탈북자를 돕는 신부님께 봉헌하셨다고 했다. 성경 속 가난한 과부의 자선이 바로 이러했을 것이다. 그날 나는 봉투에 약간의 돈을 준비해 갔는데 그 자매님이 봉헌한 금액과 일치함에 놀랐다.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었던 그분을 내 발로 찾아간 것은 하느님의 이끄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자매님께서 나의 아버님의 건강 상태를 물으시기에 극도로 고통받고 계시는 상황을 설명해 드렸더니 “그래도 아버님은 따님이 계시잖아요”라며 부러운 듯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자리에서 말씀드렸다. “형님,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시면 저에게 연락하세요. 제가 곁에 있어 드릴게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으나 그분이 나의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안심하실 것인지도 알고 있었기에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이란 상대에게 사소한 작은 일에 마음을 써 주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기댈 언덕이 돼 주는 일인 것 같다. 우리가 나라를 구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에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소정의 기부를 할 수는 있으나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작은 관심과 사랑을 전할 수는 있다. 나는 친정 조카들에게 일 년에 한 번 운동화를 사준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몇 해째 계속하다 보니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던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인데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습득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강의가 별로 먹히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강의도 훨씬 더 잘할 것이라고 하며 교수라는 직업 역시 미래에는 사라질 직업군에 속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가르치는 교육에서 사랑을 전달하는 교육으로 방식을 바꿔보았다. 그렇게 하려니 권위를 버려야 했고, 인내도 더 필요했으나 학생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교수와 학생이 사랑의 공동체가 된다면 이보다 더 이상적인 교육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