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24. 사랑하기 훈련

이윤식(후고, 서울대 명예교수)
이윤식(후고, 서울대 명예교수)

컴퓨터에는 켜는 동시에 실행되는 프로그램들이 입력되어 있어서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자동실행’을 한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특별한 생각이나 의식이 없어도 ‘자동적으로’ 하는 몸에 밴 행동들이 있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는 시동 걸고, 기어 바꾸고, 백미러 보고, 차선 바꾸고, 브레이크 밟고 등등 기억해야 할 조작 방법이 많아 식은땀이 날 정도다. 그러나 복잡한 조작 방법도 일단 몸에 배면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손과 발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면서 운전하게 된다. 심지어 음악을 듣거나 전화 통화도 하면서 운전한다. 다만 이처럼 몸에 밴 행동을 할 때까지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았다. 올해는 내가 세례받은 지 50년이 되는 해다. 50년이 된 신자니까 신앙의 모든 것이 몸에 배야 하는데, 아직도 기도를 머리로만 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작년에 혼인성사 40주년을 보냈다. 40년 동안이나 혼인성사를 살아왔음에도 아직도 배우자를 머리로만 사랑하려 하고, 몸으로 사랑하는 데는 걸림돌이 많다.

30년 가까이 ME(매리지 엔카운터)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어색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은 배우자에게 자연스럽게 할 정도일 뿐, 몸에 밴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일례로 음식물 쓰레기 하나 치우는 것도 기꺼이 할 때도 있지만 마지못해 떠밀려 하기도 한다. 기도와 사랑하기가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도대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훈련을 해야 할까.

“사람의 아들아, 이 사람들은 자기 우상들을 마음에 품고, 자기들을 죄에 빠뜨리는 걸림돌을 제 앞에 모셔 놓은 자들이다”(에제 14,3)라는 성경 구절을 묵상한 적이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컴퓨터를 켤 때 바이러스가 먼저 작동한다고 한다.

이처럼 배우자를 사랑해야 할 때 먼저 작동하는 마음속 우상, 즉 걸림돌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기심과 안락함 추구, 별것도 아닌 자존심, 채워지지 않은 정서적 욕구들…. 이런 바이러스들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몸에 밴 행동으로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가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는 계명에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로 사랑의 속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셨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한 적이 있다. 나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아직도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한다.

무의식 뇌세포 속에 ‘십자가를 짊어지기 싫고,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바이러스가 자리 잡고 있어서 나의 체세포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려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이 과연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일까.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루카 14,28) 예수님께서는 몸에 밴 사랑을 하기 위해 내 체세포 안에 사랑의 근육이 얼마나 꽉 차 있는지 계산해 보라고 요구하신다. 노력과 희생 없이, 그저 사랑받기만을 좋아하는 나에게 오늘도 주님은 단호한 결심을 요구하신다. ‘사랑의 묘약’은 따로 없다. 매일같이 사랑하기 훈련을 해야 한다. 몸에 밴 사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