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는 결론. 결론을 알면서도 빠른 쾌차의 갈망으로 증상들에 재촉하고 채근하다가 이내 열패감에 빠지기도 했다. 더딘 회복에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정신적으로 괴롭게 하고 우울감에 빠지고 힘듦을 뒤늦게야 알아채는 늦되는 자의 모순. 기진맥진하여 휘어진 건강상태로 자의도 타의도 아닌 두문불출의 시간이 예서 더 길어질까 조바심이 일었다.
무의식의 저변에서 은연중 자기변명일지 모르지만 유일하게 소통되고 있는 것은 산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자연인의 일과였다.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자연을 허락하신 하늘에 감사하며 사노라니 지금은 그곳이 천국이라고 말하는 고독한 산사람. 고통을 뛰어넘은 감사의 체험적 고백을 듣다 보면 진심을 담은 박수가 보내고 싶어진다.
마치도 자기 일이나 되는 것처럼 산중인의 질박한 후일담에 공감하기도 하며 때론 도리질하며 화면 속으로의 간접여행이 길어졌다. 물질적 삶의 무게와 건강 문제와 사람 간의 소통 부재가 산에 드는 이들 대부분의 동기다.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삶의 질곡에서 불가불 좌절했었다는 자연인의 독백이 애잔하다.
강풍에 몸을 맡긴 거친 노도와 같은 분노와 상처받은 인간관계에서의 미움, 증오, 자기 연민에서 몸서리쳤을 치열한 내면의 반란은 오죽했을까.
숱한 번민과 상념과 자기 반성과 불면의 밤을 통하여 하늘에 영육을 의탁하며 서서히 정신적인 위로와 자유를 찾고 행복해지기까지를 듣다 보면 그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없이 이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현학적 수사가 없는 겸손한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만, 실수로 산의 나무를 태우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당부의 마음도 함께 담아.
벌써 몇 년 전부터는 하지 통증으로 인해 의젓한 자세로 반듯이 앉는 것이 어렵다. 해서, 어떤 단체의 모임에도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람 좋아해서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과 대화를 통해 배우고 의미와 느낌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던 탓으로 현재의 고립감과 상실감은 그만큼 깊고 클지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함께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시간은 달음박질치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쳐가버린다. 시낭송회. 문인협회의 행사, 또 물리적 거리가 먼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래 다음엔 가게 되겠지 희망을 품자. 참석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허허로움에 또다시 가슴이 절절하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급기야 몇 주일 동안이나 미사 참여를 할 수가 없었다. 말씀과 전례. 매 주일 미사에서 말씀을 듣고 성체를 영접하고 성가를 부르며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귀하고 활력 있고 은혜로운 은총의 삶인가! 주송과 독서. 행사와 낭송 등 전례부의 임무 때문에 맨 앞의 마이크 앞에서 지켜보던 제대와 신자들.
특히 사순절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 수난의 여정을 1처 2처 옮기며 묵상의 염을 낭송하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눈물을 삼켰던 은총의 회개. 무디어진 마음이 되고 있지만, 다시금 그렇게도 뜨거운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아아 파노라마처럼 오버랩 되어 지금의 무위한 시간을 죄송한 심정으로 감히 아뢰는 나. 작아도 너무 작은 사람. 나.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