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29. 기도하는 모성

김숙경(크리스티나, 시인)
김숙경(크리스티나, 시인)

동병상련. 수발하고 수발을 받으면서 서로 숟가락 들기를 권했다. 보름 남짓 심하게 앓던 남편이 고해성사를 하고 성체분배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왔다. 여윈 얼굴에 어른거리는 미소. 그의 외출로 혼자가 되자 불현듯 세상 어디에도 계시지 않은 엄마가 보고 싶다.

자식이 앓을 때 ‘꼭꼭 씹어 삼켜라. 그렇지, 그래야 해’라며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애썼을 모정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겁다. 외로울 때 혼잣말로 부르게 되는 영원한 절대적 그리움의 대상인 엄마 아버지. 지금 홀로 사뭇 그립다.

부부가 같은 취미로 수채화를 그렸다. 그중 지그시 눈을 감고 아기 예수님의 냄새를 맡듯 머리에 코를 대고 있는 성모님과 위로하듯 어머니 팔에 고사리 같은 손을 얹고 있는 아기 예수님 그림이 있다. 유명작품을 그대로 모사한 나의 서툴기 짝이 없는 액자 속 그림을 응시하며 서 있는 나. 성장기의 아픈 자식을 안고 밤을 새우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가슴속에는 오로지 자식을 향한 회복의 간절함이 절절히 배어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하며 팔마 가지를 흔들어 예수님을 환호하던 군중들이 돌연 변심하여 주먹을 쥔 채 ‘죽여라’를 외쳤던 불의한 변심. 나와는 전혀 무관한 시대의 역사적 배경 이면에 따로 존재하는 하나의 사건이고 말까. 불의한 그런 군중들의 영혼까지 하느님께 이끌어주기 위하여 고통의 잔을 감내하고 기꺼이 죽으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 내려진 아들의 주검을 안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통한의 비탄으로 오열하셨을 피에타의 성모님! 결코 인간의 필설로는 감히 다 표현할 수 있는 고통의 수위가 아닐 것이다. 아니 못 한다. 절대적, 초월적 사랑과 극한의 모진 고통. 천지가 무너지는 비탄의 피눈물.

주님의 죽음과 성모님의 아픔이 오래오래 마음 안으로 담긴다. 육신의 고통으로 힘겨워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이 오늘 문득 부끄럽다. 면목없는 유약함에서 그만 벗어날 것을 이제 내가 내게 재촉한다. 나약한 타성을 벗고자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라며 간곡하게 아뢴다. 혼탁한 세상과 죄 많은 모든 사람을 향해 오시는 부활의 화두.

십자가의 비통함을 넘어온 인류에게 영생의 구원을 주시려는 희망찬 주님의 부활! 홀로 긴 시간 심상의 기도를 진솔하게 아뢰는 자아성찰의 시간. 성령의 뜻에 전심을 다한 신뢰로 일생을 맡기신 의탁의 어머니. 십자가상 아들의 죽음까지를 감내해야 했던 인고의 성모님 신심을 생각하니 전신에 강한 전율이 일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실 통증의 고통도 내가 이 세상에 살아서 존재하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자꾸 움츠러들며 조급하게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갈 생각보다는 산속 생활의 달관자(?)처럼 멀찍이 바라보는 느린 여유가 지금 내게도 필요하다. 우울감에다 무게 중심을 기울이지 말기. 피하고 싶었지만 요나의 기적처럼 거대한 물고기 배 속에서도 회개는 이루어진다는 말씀의 의미 되새기기. 신앙의 길로 부르시고 이끌어주셨으니 지금 이 찰나도 귀한 은혜의 피정이라 바꾸어 생각하며 감사드리기.

한정된 지면이기에 두서없이 줄여서 써야 함에 송구하오며 그동안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이 주님의 은총 가득한 복된 부활절 맞으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