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30. 주님이 주신 탈렌트

라경숙 (안젤라, 플레이어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 플루티스트)
라경숙 (안젤라, 플레이어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 플루티스트)

주님께서는 나에게 소리로 무대 위에서 희(喜)ㆍ노(怒)ㆍ애(愛)ㆍ락(樂)을 표현하는 탈렌트를 주셨기에, 문자로 생각을 전달하는 일이 내게는 서툴고 어색하다. 하지만 이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 여겨져 순명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플루티스트인 나는 현재 성가대 지휘자, 플레이어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 라 플루트 앙상블 음악감독,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 등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고 예술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이 때문에 음악과 미술, 둘 중에서 전공을 택하는 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던 어머니께서는 공부 잘하는 외동딸이 연주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멋진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결국, 나는 예술중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일반계 중학교에 진학했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취미로 음악과 미술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던 차에 신도시로 이사하게 되면서 나는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를 떠나 전학을 갔다.

신설 학교였던 중학교는 전학 온 순서대로 반이 구성되었고, 여름방학 시기에 전학 온 나는 1학년 8반으로 배정을 받았다. 그때 같이 모인 3학년은 1년도 채 다니지 않고 졸업을 하게 돼서, 난 1회가 아닌 3회 졸업생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이름을 알리고자 외부에서 받아오는 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생활기록부에 적힌 내용을 참고로 본의 아니게 내게도 여러 미술대회와 음악 콩쿠르에 참가할 기회가 많아졌다. 나는 학교의 기대에 부응해 수많은 상장과 트로피를 학교에 전시하게 되었다. 내 마음은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부모님께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하겠노라고 매일매일 바꿔가며 선언하곤 했다.

나는 유아 세례를 받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을 따라 주일 미사를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사를 계기로 신설 성당의 중고등부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새 성당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미사 반주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음악을 전공하겠다는 확신이 섰다.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 어떤 큰 연주보다도 영성체 후 묵상 곡을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연주하는 동안 내 마음을 뜨겁게 한다.

얼마 전, 기회가 되어 주교님께 이런 느낌을 말씀드렸더니, “영성체 후 묵상 곡을 연주하는 것은 안젤라가 연주하는 게 아닙니다. 성체를 영한 후에 그분께서 함께하시기에 더 성스러운 기도가 되어서 그렇게 연주할 수 있는 거예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 마음의 뜨거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깨닫지 못했던 내게 주교님 말씀은 은혜로운 충격이었다. 깨우침을 주신 그분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플루트를 전공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서부터, 나는 중고등부 미사 때 매주 영성체 후 묵상 곡을 연주했다. 지금은 은퇴하신 주임 신부님께서 신자들에게 “서양 피리 소리 듣기 좋으시죠?”라며 가끔 칭찬해 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부모님을 따라 수동적으로 미사를 드렸던 내가 이때부터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 신부님께서 칭찬해 주신 것은 주님께서 내게 귀한 탈렌트를 주셨음을 깨닫게 해주려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