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가을, 나의 본당인 수원교구 보정성당 청년성가대 지휘를 맡게 됐다. ‘지휘자’라는 직책이 내게는 생소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본당에서 2012년부터 계속해왔던 플루트 연주와는 또 다른 느낌의 책임감이고 사명감이었다. 처음으로 지휘자 단상에 섰던 날, 성가대원들에게 했던 첫마디를 기억한다.
“저는 지휘를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셔야지만, 제가 성가대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때의 나의 진심은 주님께 닿아 성가대원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셨고, 이제는 미사 지휘가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특히 대축일 미사 때마다 준비하는 라틴 미사곡은 매번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곤 한다. “정녕 당신의 도우심으로 제가 무리 속에 뛰어들고 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벽을 뛰어넘습니다.”(시편 18,30)
주일 오후 4시에 있는 청년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가대는 2시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대축일 미사를 준비하는 한두 달은 미사 후에도 연습한다. 그러면 연습은 저녁 식사 때가 돼서야 끝난다. 이처럼 주일은 개인적인 약속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제자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나는 주일이면 성당에서 봉사하는 선생님으로 당연하게 인식됐다.
어느 날, 제자와 그 어머니께서 예비신자 입교식을 했다며 찾아오셨다. 내 결혼식 참석을 위해 처음 성당을 왔던 그들은 그때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더구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주일이면 무조건 성당 봉사를 우선으로 하는 선생님 모습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내겐 또 하나 놀라운 일이었다. 이 경험은 나를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세례를 받게 된 제자를 시작으로 또 한 명의 제자가 입교식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선생님을 통해 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을 형편상 이제 하게 됐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그들에게 직접 신앙을 권유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일임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히려 이 두 명의 제자들을 통해 용기를 내게 됐다. 또 다른 두 명의 제자에게 냉담을 풀도록 권유하고 견진성사를 받게 해 주님께 인도했다. 5월과 8월에는 또 다른 제자와 그의 가족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 공부 중이다. 점점 대녀들이 많아지면서 대모인 내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매 순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깨닫곤 한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은 것 같으나, 삶 속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그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분을 만나는 일을 찾아 쉬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