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35. 복을 비는 기도 그만하리라

고정욱 안드레아 (소설가, 아동문학가)
고정욱 안드레아 (소설가, 아동문학가)

 

나는 소아마비 지체장애로 척추가 휘어 있다. 오래 앉아 있으면 측만증으로 인한 통증이 심해져 계속 자세를 바꾸거나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물론 눕는 것이 가장 좋긴 하다.

이런 나에게 미국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강연 요청이 왔다. 작은 북카페를 만들었으니 와서 개관기념 특강을 해 달라는 거다. 모처럼의 해외 강연이라 가슴이 설레었다. 하지만 이내 떠오르는 염려는 시카고까지의 길고 긴 비행시간이었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비좁은 자리에서 굽은 허리로 13시간을 버텨야 한다니. 비장애인들도 쉽게 견디기 힘든 고통의 여행이 될 게 뻔했다. 어쩌면 좋을까. 전전긍긍하는데 표까지 오고 말았다. 꼼짝없이 가야 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애인의 여행 시 항공사는 가급적 맨 앞좌석을 지정해 준다. 조금이라도 넓은 좌석을 배려해준다는 뜻이다. 출국하기 전 나는 기도를 했다. 편하게 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간절한 기도였다. 최소한 옆자리에 사람은 앉지 않게 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되면 옹색하게나마 모로 누워서 갈 수 있다. 그나마 피로가 덜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공항에 도착해 자리를 배정받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교회 측에서 티켓 구매 시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거다. 30번대의 비좁은 뒤쪽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닌가. 낭패였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혹시 옆자리를 비워 줄 수 있느냐고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물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다더니. 애석하게도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오 마이 갓! 얍삽하게 나의 편안함, 안락함을 기도한 것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길고 긴 여행길에 고생을 각오했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 하느님도 너무하시다는 원망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반성도 했다. 평소에 기도도 별로 열심히 하지 않던 나 아닌가. 비행기 타고 갈 때 되니까 간절하게 요행과 복을 비는 건 뭐였나. 부끄러운 마음을 간신히 놓아 보냈다. 조금 편안해졌다. 기내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등지에서 온 승객들이 가득했다. 허브인 인천공항에서 한 비행기에 모두 섞여 탄 거다. 정말 빈자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장기전에 돌입하려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의자가 뒤로 젖혀졌다가 바로 원상복구가 되어버렸다. 버텨보려 했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출발한 지 두어 시간 만에 승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의자를 고쳐 보려고 손보던 사무장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자리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만석이라더니 비상용으로 자리 비워 놓은 곳이 있다는 거다. 기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 보니 이게 웬일인가! 연이은 좌석 세 개가 주인 없이 날 기다렸다. 통째로 비워져 있는 게 아닌가. 승무원이 마음껏 누워 가란다. 알렐루야!

덕분에 나는 가는 길 내내 누웠다가, 잠들었다가 하며 아주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영화도 두 편이나 보았다. 콧노래가 스멀스멀 나오니 이보다 기분 좋은 여행이 언제 있었던가 싶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참으로 간사하게 나는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무사히 미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시카고 오헤어 공항으로 갔다. 이번엔 좌석 문제 따위로 복을 비는 기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알아서 다 해주시든지 말든지 처분에 맡긴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것에 흡족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동안 복을 바라며 기도하던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300명 넘게 타는 비행기의 승객이 고작 100여 명. 모든 승객이 각각 세 자리씩 넉넉하게 차지하고 누워 잠을 청했다. 돌아오는 여행 역시 아주 편안했다. 앞으로는 무엇을 바라며 복이나 이익을 비는 기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