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36. 은총이를 아시나요?

고정욱(안드레아, 소설가, 아동문학가)
고정욱(안드레아, 소설가, 아동문학가)

 

은총이라는 아이를 아십니까? 제가 쓴 동화 「달려라 은총아」의 주인공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여섯 가지 희소병을 앓고 있는 아이. 스터지-웨버 증후군 (Sturge-Weber syndrome, 뇌의 미세혈관 구조에 영향을 주는 신경 피부 증후군)과 같은 듣도 보도 못한 희소병으로 수술을 밥 먹듯 하며 고통을 겪는 아이입니다.

은총이와 아빠는 철인3종경기를 합니다. 휠체어에 앉은 은총이를 밀면서 아빠는 수영, 사이클 그리고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입니다. 혼자 뛰어도 힘든 경기를 은총이 아빠는 수년째 도전하고 있습니다. 은총이를 고쳐보려고 아빠는 직장도 관두고 눈덩이처럼 커지는 병원비를 대려다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을 돕는 일에 늘 앞장서고, 푸르메어린이병원의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은총이 부자를 저는 동화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책에서 얻은 수익의 일부는 은총이에게도 나눠 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출판사가 제 뜻에 동참해주었습니다. 지역난방공사에서도 관심을 보여 은총이의 이름을 건 철인3종경기도 매년 후원합니다. 방송에도 나오고, 은총이 아빠는 전국에 강연을 다니며 삶의 기적을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장애를 가진 아이 은총이가 이 땅에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입니다. 저는 무척 큰 보람을 맛보았습니다.

며칠 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고 보니 모 방송사의 작가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병원 관련 다큐멘터리 찍고 있는데 희소병 환자가 위급 상황이랍니다. 그 병이 바로 은총이가 앓았던 스터지-웨버 증후군이었습니다. 제 책에서 은총이가 수술받아 상태가 좋아졌다는 대목을 읽었답니다. 시간이 없다며 은총이 아빠에게 전화해 그 병원과 의사를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작품에서는 익명으로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은총이 아빠가 기꺼이 도움을 주겠노라고 해서 저는 두 사람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저의 일은 여기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 뒤로 어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새로운 희망의 끈을 찾아서 그 환자는 회복의 길로 들어섰으리라 믿습니다.

책 한 권의 힘을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동화를 쓰는 일입니다. 이 세상의 크고 거대한 일들에 비하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문단에서는 소설을 쓰던 제가 동화에만 전념한다며 깔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고작 쓰는 글이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냐는 식입니다. 동화는 그냥 쓱쓱 쉽게 쓰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동화는 인간의 순수한 본성에 닿아 있는 문학 장르입니다. 잘 쓰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동화는 힘이 있습니다.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을 독자로 합니다. 오래가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동화가 물에 빠진 자가 잡으려는 마지막 희망의 지푸라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수년 전에 이 동화를 쓰면서 제가 쓴 희소병 한 대목은 이름 모를 어느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래전에 준비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쓰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주님의 뜻이 역사하고 작용하는지를 새삼 알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도구의 역할을 충실히 한 셈입니다.

사소한 동화 한 구절이 오늘 누군가의 삶의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행동과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