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아파트는 몇 평이에요?”
어느 학교에서 강연을 마치니 학생 하나가 번쩍 손을 들고 내게 던진 질문이다. 순간 강당은 얼어붙는다. 교사들과 일부 철든 아이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강사다. 하루에도 두세 번의 강의를 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 기업, 교회, 도서관, 일반 직장 등 내가 강연하는 곳은 다양하다. 어떨 때는 하루에 서너 번씩 장소를 바꿔가며 강연하기도 하고, 전날 부산에 갔다가 다음날 목포로 가는 강행군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강연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별별 질문을 다 받는다.
강연이 많아지니 강사의 역할과 의무, 강사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강사란 자신의 삶에 경험과 지식, 혹은 정보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직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에 강연이 붐을 이뤄 수많은 강좌가 열리고 있고, 텔레비전이나 각종 사회 프로그램에 강연이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각급 학교에서도 강사들을 초청해 작가와의 만남이나 각종 교육의 명목으로 강연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본다면 이것은 놀라운 변화다. 우리는 1년 내내 칠판 앞에서 담임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공부하며 교과서 속의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강연을 하며 사람들 앞에서 삶의 방향과 지표를 말하다 보니 가끔 나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과연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강연에서 한 말의 내용을 책임지지 못해 불명예를 당하거나 사회적 지탄을 받는 강사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띈다.
학력을 속이거나, 일구이언하거나, 불미스러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고난을 이기며 참고 살라며 강연하더니 결국 자살한 사람까지…. 결국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말로 감동을 주고, 대중의 삶에 변화를 주려 하므로 강사들에게 들이미는 잣대는 더욱 엄격하다.
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말로 대중을 설득하고 변화를 시도했던 사람들은 많다. 예수님이 그러했고, 소크라테스, 공자, 붓다가 다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영혼을 바꾸는 강연가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사상에 큰 영향을 준다. 우리의 삶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들을 절대 강사라고 부른다. 그들의 권위와 인격과 삶은 그야말로 초인의 경지이고 범인(凡人)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깨달음을 설파했다.
그들과 비교해 보면 일반 강사의 가장 큰 위험성은 말이 바로 쉽게 나간다는 점이다.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말은 위험하다. ‘언행일치’가 그래서 나는 강사의 가장 큰 덕목이라 여긴다. 성경에도 있다. 제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말과 글이 넘치는 세상이다. 조심하며 말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강사가 되어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이건 혼자 되는 일이 아니고 늘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가능하다.
앞서 한 학생의 질문에 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눙치며 대답한다.
“응, 우리 집은 하도 넓어서 현관에서 내 서재까지 가는 데 삼박사일이야.”
강당엔 웃음보가 터진다. 웃자고 한 질문에 죽자고 덤빌 필요는 없다. 강연을 소명으로 받은 자라고 이 정도 유머를 재능으로 주셔서 안심이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