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41. 아전인수

왕은철 (미카엘, 전북대 영문과 교수)
왕은철 (미카엘, 전북대 영문과 교수)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자기 편리에 맞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전인수, 즉 자기 논에 물대기. 우리의 생각이 주관적이고 자의적으로 흐르는 것은 그런 경향 때문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성당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월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내가 굳이 그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그로부터 두 달 후인 2013년 3월에 아주 특별한 분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병아리신자였던 나는 그 일을 엄청난 행운이자 축복으로 생각했다. 그 시기가 겹친 것만으로 행복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입만 열면 프란치스코 교황 얘기를 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매번 그 얘기를 지겹도록 들어야 했다. 미안하지만,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일이어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교황 얘기를 하면 이상하게 목이 메어왔다. 삼십 년 가까이 나를 따라다니던 제자는 그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가족까지 끌고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라파엘의 대부가 되었다.

내 가슴을 뛰게 만든 것은 세상의 타자들을 바라보는 교황의 너그럽고 따뜻한 눈이었다. 높은 사람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래서 더 높아 보이는 그 눈이었다. 그가 교황으로 취임하면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한 것만 해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옆에 있던 브라질의 후메스 추기경이 그를 안아주며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세요”라고 말한 것을 잊지 않았다. 예수회 출신인 신부인 그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자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삼은 이유였다. 가난한 사람을 받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분명한 선을 긋는 것처럼, 우리는 박탈과 불평등의 경제를 향해 ‘살인하지 말라’라고 말해야 합니다.” 자신이 택한 새로운 이름에 걸맞은 사자후였다.

정말이지 그는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취임 몇 개월 후인 2013년 7월 말, 브라질 방문을 마치고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80분에 걸쳐 했던 대담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그는 스물 한 명의 기자들로부터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다. 수행원에게 들리지 않고 검은 가방을 왜 직접 들고 다니느냐는 가벼운 질문에서부터 교회의 타락, 동성애 등에 관한 무거운 질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질 때, 그는 겸손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답을 이어갔다.

그는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하느님을 찾고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누구인데 그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보수적인 교회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타자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답변이었다. 그는 여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에서 여성은 주교들과 사제들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것에 관한 신학적 설명이 부족한 상태이니 그것을 더 명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황으로서 이보다 더 열린 입장이 있을 수 있을까. 그에게 교회는 여성이었다. 성모 마리아였다. 어머니였다. “자비로 상처를 치료하는 어머니”였다.

나를 더욱 전율하게 만든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고 지혜를 얻으라는 말이었다. 그는 그토록 ‘열린’ 사람이었다. 내가 문학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작가까지 언급하니, 어찌 내가 열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그래서 그를 따라,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가 믿으니 나도 믿는다. 나는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가 교황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전인수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