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천주교회는 1995년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 결정에 따라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지냅니다. 천주교회가 농민의 삶을 기억하고 위로하며, 농촌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도시와 농촌이 힘을 모아 하느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을 잘 섬기라고 농민주일을 처음 만들었을 때 참으로 기뻤습니다. 누가 알아준다고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면 없던 힘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올해가 농민주일 23주년이니, 23년 전에 천주교회가 이런 결정을 한 것입니다. 나라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많은 사람이 업신여기는 농민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이런 일 저런 일 하다가 안 되면 농사나 짓지’ 하는 말을 예사로 내뱉던 시절에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학생들 희망 직업 100가지 가운데도 없고 ‘기타란’에도 없는 농업을 지켜야 한다고 교회는 앞장서서 말했습니다.
“굶어 죽더라도 도시에서 굶어 죽어야지, 농사만은 안 된다”고 부모님한테 귀에 못 박히도록 들으며 살았는데, 천주교회에서는 “하느님은 농부이시다”(요한15,1)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기뻐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올해도 지난해처럼 제가 몸담고 있는 가톨릭농민회 열매지기분회에서는 창원시 사파동성당에 가서 강론하고 9가구 28명의 분회원들이 정성으로 키운 농산물을 나누었습니다. 한 해에 딱 한 번, 도시에 있는 큰 성당에서 강론을 할 수 있는 날이 농민주일입니다.
“저는 합천 황매산 자락에서 농사지으며 산 지 13년 된 산골 농부 서정홍(안젤로)입니다. 농부 나이 이제 열세 살이라 아직 깨달을 게 많은 철없는 농부입니다. 이 철없는 농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끔 묻습니다. 편안한 도시에서 살다가 왜 농부가 되었는지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하곤 합니다.
‘조금이라도 자연을 덜 오염시키며 살 수 있겠다 싶어서요. 조금이라도 죄를 덜 지으며 살 수 있겠다 싶어서요. 자라나는 아이들 앞에 서면 덜 부끄럽게 살 수 있겠다 싶어서요. 무엇보다 신앙인으로서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습니다.
그리고 석유와 가스 사용을 줄이려고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방을 데우는 작은 구들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황금보다 귀한 똥오줌을 수세식 변소에 함부로 버리지 않고 생태 뒷간을 지어 거름을 만들어 다시 흙으로 돌려줍니다. 저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가톨릭농민회 열매지기 분회원들은 대부분 그런 뜻을 두고 그렇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누가 제게 혼자서 이렇게 살라고 하면 힘들어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농사일이 고달파도 여럿이 함께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욕심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하느님은 농부이시다.’ 그리고 가끔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만일 제가 죽어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농부로 태어나고….”
농민주일 행사를 마치고 애쓴 농부들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산길을 걷는데, 대숲에 텃새들이 묻습니다. ‘어디 다녀왔냐?’고.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