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260. 양보하고 함께할 때 행복이 온다

(류연실, 젬마, 사진가·이탈리아어 통번역사)
(류연실, 젬마, 사진가·이탈리아어 통번역사)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면서 현지 코디네이터와 이탈리아어 통역사로 활동하던 중 참 많은 곳을 여행하는 행운을 얻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아시시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도시’로 알려진 평화의 성지, 20살 때 처음 방문한 후 여러 번 갔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15년 콜베방송에서 ‘프란치스코 성인’ 특집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게 길을 묻다’ 촬영을 했을 때다.

콜베방송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PD 신부님, 촬영팀과 함께 일주일 동안 아시시에 머물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했다.

프란치스코 성인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우리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같은 현실을 살고 있음을 느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모든 피조물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며 사랑하셨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특별히 구비오에서의 일화는 깊은 감동이었다.

늑대들이 구비오 사람들을 괴롭히자 프란치스코 성인은 중재자로 나서서 늑대에게 “난 너를 이해해. 네가 배가 고프니까 그랬겠지…. 하지만 내 형제들이 너무나 괴롭단다. 내가 앞으로 형제들에게 얘기해서 너에게 먹을 것을 줄 테니 내 형제들을 괴롭히지 말아다오”라고 말한 후 더는 늑대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늑대마저도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사랑의 마음을 다해 대화를 건넸을 때 그 마음이 전달된다는 것이 와 닿았다. 첼라는 작은 방이라는 뜻으로 성인께서 종종 기도하러 가셨던 곳인데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작은 곳에서 기도를 드리셨다고 한다. 그곳에서 기도를 드리며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쉼을 얻고 회복하게 됨을 느꼈다.

촬영하며 특별히 와 닿은 말씀이 있었는데 “질문하는 자들에게 겸손하게 대답하고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라”는 말씀이다. 일의 특성상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화합해 맞춰야 하는데 매 순간 내 생각이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나를 비우고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함을 배운다.

일이기에 전문성도 필요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관계가 우선돼야 함을 항상 명심하려고 하는데 그 관계를 조율하고 인내하는 과정에서 나뿐 아니라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관계를 형성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준비가 안 된 부분도 있어 헤매기도 했다. 각자 입장에 따라 필요로 하는 게 다르다 보니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어느 순간 우리 사이에 서로에 대한 존중, 신뢰와 믿음이 형성되어 감을 보게 됐다.

인터뷰하기 힘든 분들께 미소 지으며 낮은 자세로 다가갔을 때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주셨고 촬영하느라 수고 많은 우리 팀이 매끼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성심껏 식당을 섭외하고 주문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만족하는 모습에 흐뭇함을 느꼈는데 삶은 참으로 단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 수고해도 배려하며 공동의 선을 먼저 찾는 것. 전문가는 자신 혼자 잘하는 사람이 아닌 함께 잘할 수 있도록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사람이라는 것. 우리가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 능력을 인정해주면서 이 일을 통해 보람을 얻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안에 계신 하느님께 맡겨드렸기에 가능했다.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지혜를 주신 덕분에 일이 잘 마무리됐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