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38. 부활하라, 영화적 생명이여!

민병훈 바오로(영화감독, 한서대 연극영화과 교수)
민병훈 바오로(영화감독, 한서대 연극영화과 교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던 괴짜 감독, 당신이 제게 남긴 이미지는 피곤한 모습으로 카메라에 빨려들 듯이 깊게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순수한 열정이라고 하기엔 범상치 않은 광기까지 느껴지는, 당신의 깊은 내면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엔 저 역시 당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반 대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당신 영화를 보며 느린 전개와 영화 속 서술 방식에 상당히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당신의 철학적, 종교적, 예술적 감각과 지식은 정말로 대단했지만 지루함은 여전했습니다.

특히 「안드레이 루블류프」는 거대한 서스펜스나 반전을 철저히 배제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영화 전체를 커다란 호수 중앙에 파문 없이 잔잔하게 던져 놓고는 무심한 듯 다른 이야기로 이끌고 갔습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속도감을 잃고 때론 정지해 있는 듯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영화의 느릿한 전개와는 다르게 감정의 소용돌이와 충격은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침전해 들어갔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당신 작품과 같은 부류의 영화를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술영화에 대한 막연한 편견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 작품을 보면서 몇 번이나 호흡을 멈췄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당신의 영화적 성공과 명성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 작품 앞에 정말로 감탄사를 연발한 것은 당신의 자기희생적 영화 만들기의 분투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저를 정말로 놀라게 하고,

미치도록 황홀하게 한 것은 당신의 마음속 깊은 신에 대한 동경과 뜨거운 사랑이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했기 때문입니다. 당신 작품은 한 마디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하느님을 향한 애달픈 삶과 희생이 너무나 절절히 느껴져 저의 신앙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가끔 산더미같이 쌓인, 당신이 찍은 필름을 생각합니다. 커다란 산만큼 쌓인 필름의 높이가 주옥같은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음을 말해 주고 있을 것입니다.

수십 년을 용광로에서 달고 달으면서, 힘을 얻고 살이 붙으면서 생명력을 얻은 당신 작품은 한 마디로 신비입니다. 좋은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와 이미지가 함께 숨을 쉬며 함께하고 결국은 좋은 관객을 만나 세대를 초월한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을 지탱해주는 것은 밝은 대낮의 태양이 아니라 암흑과 절망이 길고 긴 밤을 견디게 해주는 별일 것입니다. 감독에게는 그러한 별만이 희망이며 인생입니다. 스크린에는 당신의 커다란 외침 소리가 들리고 소리 없는 메아리로서 별이 스크린에 반짝입니다.

그 암흑과 절망의 긴긴밤 속에 따라간 그 ‘별’도 언젠간 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순간까지 찬란하고, 반짝일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아직 영화를 만들 시간이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해.”

슬픈 사랑의 여운에 아직도 가슴 먹먹한 느낌을 담고 있지만, 감히 당신 작품이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광활한 대자연이 아름다웠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한순간에 확 타오르는 불꽃처럼 짧은 열정을 쏟아 부었다가 금세 사그라지는 연기처럼 우리에게 불현듯 사라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도 나이가 들면, 당신처럼 절절하게 하느님과의 대화에 진실로 고개를 절로 끄덕일 날이 올 것입니다. 진심으로 당신의 평안과 영생을 기원하며…. “다 스비 다니야!(다시 만나요!)”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