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39. 위대한 신, 위대한 신호

민병훈 바오로(영화감독, 한서대 연극영화과 교수)
민병훈 바오로(영화감독, 한서대 연극영화과 교수)

 

침묵! 그것은 소리가 있을 때 존재합니다. 침묵은 모든 소리를 일순간 삼키고 나아갈 수 있는 드높은 소리입니다.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 시계 가는 소리, 성경 책자를 넘기는 소리, 곤충이 날아다니는 소리, 톱으로 장작나무를 켜는 소리,

촛불을 들고 기도하는 소리가 대사가 되어 영화를 수놓습니다. 때론 별이 뜨고 지는 소리,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눈이 내리는 소리도 들릴 것 같습니다. 일상의 온갖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수도자들의 침묵은 언어와 소리마저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훌쩍 수행자들이 여행길에 오릅니다. ‘이대로 살다가는 죽겠다’라는 절절함이 그들의 나이와 국적을 초월해 일탈 아닌 일탈을 감행하게 만듭니다. 수행자들은 묵언과 고행을 통해 어떤 진리에 달하는 동안 군더더기 살이 빠져나갑니다.

검게 그을려가는 얼굴과는 달리 정신은 한없이 투명해져 갑니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이 마주한 것은 맑은 영혼이 깃든 자신의 얼굴과 깨달음 하나일 것입니다.

영화 「위대한 침묵」은 17세기에 지어진 알프스 산기슭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침묵 수행하는 수사들의 일상을 마치 고전 명화 같은 영상으로 보여주는 다큐 영화입니다.

이 뛰어난 다큐를 찍은 감독 필립 그로닝의 렌즈는 가장 느린 속도로 눈부신 침묵을 수도원 밖으로 불러냅니다. 그로닝은 일주일에 한 번 야외에서만 대화할 수 있는 엄격한 침묵공양을 그곳의 수사들과 똑같이 수행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인공적인 소리는 아무 것도 허락하지 않은 이 영화 속에는 인간의 언어도 최소한의 것만 허락합니다. 소리를 듣는 수도사들의 신체 일부, 귀를 클로즈업하는 화면이 종종 나오는데 그 순간 화면에 잡힌 수도사는 누군가와 대화 중이 아닙니다.

독방에서 홀로 기도서를 읽거나 고개 숙여 기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와 대화 중일까요. ‘내면의 거룩함’과 조응하기 위해 그들은 철저히 홀로 돼 자신을 독방에 가두고 기도하며 신께 나아갑니다.

“주께서 나를 이끄셨기에 지금 내가 여기 있나이다.”

세속에 속한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한 채 하느님 품에 자신을 맡겨 평생을 하루같이 수행에 수행을 쌓고 있는 수도사들이 신조로 삼고 있는 말들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삶의 감사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가장 조용한 곳, 가장 외로운 곳, 가장 가난하고 검소한 그곳에 수도자들의 기도와 보속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있고, 희생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절제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쁨의 찬미가 있었습니다.

눈이 먼 한 늙으신 수도자가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내 눈을 멀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그것이 내 영혼에 유익이 되기에 주님이 좋은 것을 마련하신 것이라고. 모든 것을 최선의 것으로 이끄시는 주님이 계신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기뻐할 수밖에 없다고.

그런 주님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 안타깝다고. 영화 「위대한 침묵」을 보고 나오면서 가슴이 멍해져 왔습니다. 누군가의 기도와 보속이 쓰러져가는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고, 지금의 나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반대쪽 스위스 산속에선 나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파란 눈의 수도자들의 찬미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도 그분들과 함께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그들의 기쁜 삶이 세상 속으로 번져나가길 기도드려 봅니다. 위대한 침묵이란 마음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안 속에서 숨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