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417. 누구에게 돈을 맡길까(이서원, 프란치스코, 한국분노관리연구소장)

이서원, 프란치스코, 한국분노관리연구소장

대학원 장애인복지론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교수님이 우리에게 던진 첫 질문은 “오늘 수업을 받고 나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절단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였습니다. 학생들이 차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눈물만 날 것이다, 너무 화가 날 것이라는 이야기 등이 이어졌습니다. 제 차례가 왔을 때 ‘죽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그래, 다 다르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한 그 마음이 사실은 각자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야.” 순간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누구보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던 저의 진짜 속마음을 다 들킨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장애인을 생각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진짜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만약 장애인이 되었을 때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 진짜 태도입니다. 그날 이후 장애인을 볼 기회가 있으면 ‘내가 저 사람이라면’이라고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장애는 불편한 것이며, 불행한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편도 사회가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선의 불편과 물리적 불편은 모두 사회가 특별한 배려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훗날 교수로 장애인복지론을 가르치게 된 계기도 그날 느낀 부끄러움과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질문 하나는 관점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었습니다.

한번은 병원에서 초청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강의’에 시각장애인 교수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우리 아이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교수님처럼 만들고 싶은 부모들이 빼곡히 강의장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자리에 앉자 앞에 있는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머님, 만약 돈 1억 원을 누구에게 맡기고 외국을 1년쯤 다녀와야 한다면 누구에게 맡기시겠어요?” 질문을 받은 엄마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다 대답했습니다. “네,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에게요.” 교수님은 그 말에 “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친구에게 맡기시려고 하세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떼먹지 않을 것 같아서요.” 강의장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웃음이 잦아든 뒤, 교수님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그 친구는 떼먹지도 않고, 적게 받았다고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려주지 않을까요. 하느님이 지금 장애를 가진 아이를 세상 누구에게 맡길까 고민하신다면 누구에게 맡기려고 하실까요. 저 사람은 특별한 사랑이 필요한 아이를 학대할 것 같고, 또 저 사람은 입양 보낼 것 같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줄 사람을 선택하셔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아이를 맡기신 게 아닐까요?” 침묵이 흐른 뒤 강의장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질문 하나가 장애 자녀와 자신을 보는 눈을 바꾸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선택한 부모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이 옳으시도록 자녀를 키워야겠습니다.

출처: 가톨릭 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