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50.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와 호스피스의 도움

이승하 프란치스코(시인, 중앙대 교수)
이승하 프란치스코(시인, 중앙대 교수)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은 생시에 담배를 즐겨 태웠다. 그래서인지 폐암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나 수술을 권유한 이도 있었지만, 본인은 83세인 자신의 나이를 감안해 수술과 치료를 포기하고 고통을 견디다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분처럼 당당하게 자기가 죽을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의사는 어떻게든 환자의 목숨을 연장시키려 하고, 보호자는 의식 없는 환자의 목숨을 감히 거둘 수 없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연명케 한다. 그래서 존엄사 문제가 자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해 전 일인데,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팀은 서울대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에 들어간 환자 298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편안하게 집에서 죽음을 준비해야 할 기간인 임종 직전의 1개월 동안 대형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옮겨 병원 치료를 받게 하는 경우가 33.6%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은 임종 직전 1개월 동안 병원의 침대 위에서 산소 호흡기나 진통제로 연명케 하는 경우가 9.2%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선진국에서는 말기 암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는 호스피스 인력을 충분히 키워두고, 환자는 이들의 보살핌 속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이들이 환자를 돌본 덕분에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없이 쓸쓸히 숨을 거두는 환자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사 대상의 50.3%가 임종 2개월 전까지 적극적인 항암제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체력이 바닥나 있는 말기 암환자를 힘든 항암 치료의 길로 내모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임종 6개월 전부터 적극적인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의 비율은 94.6%로, 미국의 33%보다 월등히 높았다.

내 아버지는 림프종 암으로 고생하셨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엄청난 양의 주사와 투약으로 항암제 치료를 받았다. 여든다섯 연세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의사가 그러자고 하는데 가족이 어떻게 반대할 수 있으랴. 아버지는 입원 4개월 만에 폐렴이 와서 급사하셨다. 항암 치료의 고통을 말년에 겪게 해드린 것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허 교수는 “말기 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상당수 환자가 임종 직전까지 고통 속에서 의료기관 사이를 방황하고 있다”고 했다.

실버산업의 시설 확충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게끔 돌봐드리는 호스피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정부에서는 한시바삐 호스피스 인력을 대폭 양성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병원이나 집에서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으며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는 사망 인구의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호스피스가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경제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처우를 확실히 해주어야 한다.

이와 아울러 가장 중요한 것은, 임종을 앞둔 이가 가족도 하루에 두 차례 짧게 면회하는 병원 중환자실이 아닌 자기 집에서 마음이라도 편한 상태에서 숨을 거둘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전화를 한밤중에 받았다. 방금 돌아가셨다고 간호사가 전해주어 병원 중환자실로 달려가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했을 뿐이다. 수십 명이 함께 누워 있는 병원 중환자실―간호사라도 내 아버지의 머리맡을 지켰을까?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