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59. 노아의 비극

강금실 에스더(법무법인 원 변호사)
강금실 에스더(법무법인 원 변호사)

 

창세기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 후 생명의 싹을 틔우는 창조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인류 종말을 초래하는 비극적 역할을 한 노아가 있으니, 작가 정용준의 장편소설 「바벨」의 주인공이 그 사람이다.

말더듬이에 외톨이던 소년 노아는 동화 ‘얼음의 나라 아이라’를 읽고 매혹된다. 아이라에서는 사람들이 말을 하면 사라지지 않고 얼음으로 변한다. 얼음이 녹으면 말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라의 봄은 말들이 녹아 되살아난 소리로 정신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아이라에 봄이 오면 얼음이 녹아서 누군가는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노래하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슬프게 울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수많은 말을 듣는다. 오래전 곁을 떠난 이들의 목소리도 듣는다. 아이라인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되살아난다.

소년 노아는 과학자로 성장해 동화를 현실화하는 상상력 가득 찬 실험에 도전한다. 노아의 실험은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펠릿’(pellet, 원래는 육식성 새가 토해내는 불소화 물질을 뜻하는 말)이라는 형체로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는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펠릿은 지독한 악취가 나고 뱀처럼 미끈거리거나 비늘에 뒤덮여 칙칙하고 흉측했다. 사람들이 말을 하면 펠릿이 입에서 끝없이 흘러나와 쌓였다. 펠릿은 ‘외부로 드러난 마음’이었고 ‘밝히기 싫은 비밀이자 추문’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쌓여가는 펠릿과 그 악취로 인해 질식해 죽고, 사회 전체가 악성 폐기물 같은 펠릿으로 뒤덮이는 전무후무한 재난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노아의 실험으로 형성된 시대를 ‘바벨’이라 부른다. 바벨은 인류에게 ‘말에 대한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하느님은 홍수로 이 세계를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창세 9,11)을 지켰으나, 그 대신 ‘느린 속도로 서서히 차오르는 말의 바다’를 만들었다. ‘인간들은 자신이 내뱉은 말속에 잠겨 질식했고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해내지 못했다’.

한 비평가는 이 소설을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묵시록 이후의 묵시록)의 한 유형이라고 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최근에 와서 부쩍 늘어나고 있는 인류 종말에 관한 영상 서사들이 이전과는 달리 재앙을 더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전제하고 파멸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의 무대로 한다는 점을 가리켜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묵시록이 죄의 성찰을 촉구하고 예수 재림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반해서, 대체로 종말론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를 접해보면 요즘 와서는 인류가 자초하는 비극적 결말이 풍미한다는 실감을 한다. 이 소설은 더이상 개선의 방법이 없어 모든 노력이 중단되고 파국을 기다리는 상황을 설정해서 비극 그 자체를 묘사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아의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과학적 실험이 정부의 개입으로 응용방식에 실패해 펠릿을 출현시켰다. 과학의 진전에 개입된 정치적 의도와 자금의 힘, 그리고 인간의 육체성을 벗어난 말의 차원을 창조했으나 상호 소통은 더 어려워지는 언어 현실 그 자체가 비극의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 이 소설의 독창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태 15,18; 마르 7,23)고 한 성경 말씀이 거듭 떠올랐다. 과학의 시대에 진정한 소통 능력을 잃어버린 채 쏟아져나오는 말들이 그 자체로 인간을 질식시켜버릴 것이라는 이 소설의 메시지는 깊이 새겨볼 만하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