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60. 유다와 은화(1)

강금실 에스더(법무법인 원 변호사)
강금실 에스더(법무법인 원 변호사)

 

마리아가 잔치의 식탁에 앉아계신 예수님께 향유를 쏟아부은 사건은 성경의 유명한 일화이다.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는 이 사건 바로 다음에 유다의 배신을 기록하고 있다(마태 26,6-16; 마르 14,3-11).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 면전에서 비싼 향유를 낭비한다고 마리아를 비난했다. 왜냐하면 향유값이 당시 은화 300데나리온이 넘는데, 1데나리온은 하루 품삯 정도의 가치가 있었기에 현재로 치면 대체로 1년치 평균 근로소득에 해당하는 고가였기 때문이다.

한편 유다는 ‘은돈 서른 닢’을 예수님 몸값으로 받았다(마태 26,15). 이때의 은돈은 향유값을 계산한 데나리온과는 달리 세켈이라는 단위를 썼다. 1세켈은 나흘 치 품삯에 해당하기에 계산해보면, 유다가 받은 돈은 향유값에 훨씬 못 미친다.

은 서른 세켈은 소가 남의 종을 들이받았을 경우 배상금에 해당한다(탈출 21,32). 또한 즈카르야가 한 달 사이에 도살될 양 떼를 돌보고 받은 품삯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주님의 값어치를 매겨놓은 품삯(즈카 11,12-13)이라고 한다. 결국 유다가 받은 은돈 서른 닢은 그다지 크지 않은 금액이며 예수님을 종에 비교할 만큼 하찮게 여겼음을 상징하고 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거액을 챙긴 것이 아니라면, 배신의 동기는 금전적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다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된 사도였고(마태 10,1-5), 특히 회계 책임을 맡은 사람이었다(요한 12,6). 유다가 상당한 비중을 지닌 제자였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유다의 배신은 단순히 일시적인 우발적 충동이나, 평소 사려 깊지 못한 경솔함에서 비롯된 행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다 자신에게도 존재의 명운을 걸고 선택할 만큼 중대한 결단이었기에 사후 잘못을 뉘우쳤을 때 자살(마태오 27, 3-10)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유다가 예수님과 상당한 기간 동고동락하면서 언제 배신을 결심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행위로 나간 그 시점에는 단호한 결단이 있었고, 그러기까지 유다의 내면에서 회의와 갈등이 고조되다가 한순간 격렬한 확신에 휩싸이는 절정에 이르러 극단적 행위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제자로서의 신뢰관계를 내던지는 행위였으므로 예수님께 대한 확신에 이를 만큼의 혐오와 반감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만일 유다가 단순히 실망한 것이라면 그냥 떠나면 되었을 텐데 적극적인 밀고행위로 나아간 것은 그의 내면이 그만큼 반감으로 가득 찼음을 보여준다.

나는 향유 사건이 그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고 짐작해본다. 성경이 향유 사건 바로 다음에 유다의 배신을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다가 평소에 돈을 탐내는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렇기에 더더욱 값비싼 향유를 낭비하는데 격렬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하늘나라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스승 예수와 세속의 삶의 가치관을 가진 제자들 사이의 인식 차이와 몰이해는 성경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특히 이 향유 사건은 예수가 복음선포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는(루카 4,18)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서 서로 엇갈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재물을 써야 한다는 분배적 정의를 내세웠고 이것은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마리아를 두둔했다. 그리해서 유다가 배신에 이르게 되었을 때 다른 제자들 또한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고, 그 분위기 속에서 배신하는 제자마저 나왔을 것이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