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74. 다름과 틀림

강재형 요한 사도(MBC 아나운서)
강재형 요한 사도(MBC 아나운서)

 

질문하고 답을 끌어내는 인터뷰는 아나운서가 하는 여러 일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고, 늘 인터뷰어(interviewer, 질문자)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이(interviewee, 답변자)가 되어 인터뷰를 당할 때도 있다. 방송 진행자로 받는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인상적이었느냐?” “아나운서 생활하면서 제일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이냐?” 이런 질문이다. 그럴 때면 내게 인상적이며, 보람을 느낀 방송 순간은 언제였을까 곱씹어 본다.

어느 때였을까, 선뜻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처럼 방송가에는 ‘방송(비중)에 크고 작음은 없다’는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방송을 되짚어 보니 바로 어제 일인 듯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장례 미사 중계방송을 맡았을 때이다. 도움말을 주기 위해 스튜디오에 나선 신부님은 물론 중계 아나운서인 필자도 슬픔을 꾹꾹 눌러 참으며 초연한 척해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방송할 일이 없었다면 좋았을 프로그램이지만, 누군가는 방송석에 앉아야 할 일이었다. 이처럼 아나운서를 포함한 방송인들은 내키지 않는 자리에 나서야 할 때가 있다. 배당된 업무가 기껍지 않아도 ‘일’이기에 마다할 수 없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일 것이다.

오래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석가 탄신일에 열린 ‘봉축 법요식’ (부처님이 오신 것을 축하하는 불교 의식) 중계방송을 누가 하는가를 놓고 생긴 일이다. 공휴일인 그날 여럿의 방송 일정을 확인한 부장 아나운서가 아무개 아나운서에게 그 일을 맡겼다.

회사의 업무 지시이니 마땅히 해야 할 일.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 아나운서가 ‘자신은 개신교 신자이며, 부친이 목사님’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고, 장로였던 부장 아나운서는 그 뜻을 ‘일리 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적재적소 원칙은 방송 일에도 적용되는 것이니 그가 최선의 방송을 하기엔 어렵다고 부장이 판단했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했다. 개신교 신자여서 법요식 중계를 못 한다면 불교 신자는 성탄절 방송을 못 하는 것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던 이들이 없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지 않지만, 이상하지 않은 일도 있다. 얼마 전 출연자로 만난 종교 전문 기자를 서울 명동대성당 건너편 한 밥집에서 만났다. 식당은 보살(불교의 나이 든 여신도)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거사(출가하지 않고 불교 법명을 가진 남자)한 분이 먼저 와 있었다.

곡차(절에서 술을 이르는 말)를 곁들여 ‘사람 사는 얘기’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에 ‘주지급’ 스님 한 분이 합류했다. ‘보살님’과 ‘거사님’, ‘스님’ 그리고 ‘형제님’이 한데 어우러진 자리가 파할 무렵, 스님이 내 손목을 감아쥐었다.

“스님, 왜 이러시는지요?”하는 소리는 웃음에 묻히고 내 손목시계는 어느새 스님의 손목에, 스님의 것은 내게 채워져 있었다. 이후 한동안 시간을 알려주던 그 시계는 내 곁을 떠났지만 “부처님의 것과 예수님의 것을 돌려쓰자”는 스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귓전을 맴도는 듯하다.

천주교 신부님과 개신교 목사님, 불교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사람 사는 얘기’를 풀어가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종교와 교파가 다른 성직자들의 솔직한 대화가 신앙인은 물론 일반 시청자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타 종교는 ‘다른 종교’이지 ‘틀린 종교’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