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8. 소울 메이트

신달자 엘리사벳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신달자 엘리사벳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가톨릭출판사 독후감 심사를 했다.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은 원주교구 구곡성당의 유 클라라씨다. 제목이 ‘산티아고 길의 소울 메이트’였다. 그는 너무 답답한 일상에서 ‘길’이라는 단어에 매료돼 그 책을 읽었다고 했다.

첫 아이가 불편한 몸이었고 연이어 두 아이를 더 얻어 정신없이 막힌 삶을 살다가 “사흘” “아, 나에게 사흘”하고 외치면서 밥 먹고 치우는 일만 하면서 그 사흘 동안 책만 읽었다고 했다.

1초도 자유시간이 없었던 그에게 책은 바로 자유와 초원의 광장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읽은 책이다. 그렇게 날개를 달고 따라간 길 위에서 진정한 소울 메이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내가 공감했으므로 그에게 최우수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 아니 모든 심사위원의 점수가 탁월하다. 나는 대학 시절 가장 큰 소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소울 메이트였다. 영혼의 짝이라고나 할까, 나는 어느 순간도 그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

누구라도 만나면 혹 이 사람일까? 나는 가슴이 떨렸고 서서히 그 떨림은 사라졌다는 게 내 현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길은 너무 지루하고 그 길은 너무 가파르고 그 길은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랬다. 그 길은 너무 지루했다.

걷고 다시 걷고 발에 물집이 터지고 다시 터지고 피가 흐르고 다시 아물어서 그 물집자리가 단단해진다는 것은 단단함의 정신에 도달한다는 게 아닐까. 결국 그 짝의 형상조차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결과에 다다른 것이다.

‘무상’이란 말은 그래서 태어났는지도 몰랐다. 70년 세월 속에서 진정한 반려자가 없다는 것은 아마도 내 실책이었을 것이다. 내 이기심이 모든 사람들을 내 옆에서 물러서게 한 것을 아닐까 후회도 자책도 해 보지만 늘 “없다”로 결론 내는 것, 그것이 내 이기심인지도 모른다.

가끔 수첩을 꺼내 이름을 죽죽 읽어 내려가다가 그 시간에 언제라도 전화를 누르고 친구를 부르리라, 친구를 찾으리라 한장 한장 뒤적이다가 늘 수첩을 닫아버린다.

아직도 그런 것을 꿈꾸느냐고 눈을 흘긴다면 이런 소망을 사춘기적 감상이라고 돌려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말 소울 메이트는 존재했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주인공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말 그대로 소울 메이트의 삶을 살았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동지며 연인이며 영혼의 반려자로 살아간 이 두 사람은 물질문명에서 적극 도피하는 데 성공했고, 나이 차는 20세가 넘었지만 영혼의 키와 무게가 똑같았던 삶을 살았다. 과도한 경쟁과 욕망의 과잉을 버리고 버몬트 숲에서 고요히 살았다.

스코트는 1983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100세를 넘기지 않으려고 스스로 밥을 끊고 고요히 숨을 마감했던 사람이다. 헬렌은 8년 뒤에 회고록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쓰고 1995년에 삶을 마감한다.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장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그들에게 가장 큰 재산은 영혼의 짝으로서 기울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부럽고 위대했다고 늘 생각하는 커플이다. 너무 많은 야망과 늘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결핍에 가까운 욕망이 나의 짝을 내친 것이라는 것을 지금 알겠다. 그들도 버린 것들이 왜 없었겠는가. 버리지도 않고 영원한 짝을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그 소울 메이트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한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나는 다시 생각 생각한다. 이대로… 가을 잎이 앞으로 떨어질 것이 겁나 불그레한 얼굴을 하는 이 가을을 바라보는 이런 나의 아침이 바로 소울 메이트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지 그분에게 묻고 싶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